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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Aug 12. 2022

관계를 맺어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인간관계의 이해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유난히 목소리가 좋았던 복학생 선배 A에게 금방 반한 적이 있다. 그때 나도 처음 알았다. 내가 금사빠라는 것을. 나 혼자 좋아하다가 그 복학생 선배가 대학 1학년때부터 사귀어서 군생활 하는 내내 기다린 여자친구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떻게 고백하나 끙끙 앓던 찰나 알게된 사실이어서 내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고 렇게 내 첫사랑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서 2년 후, 또 다른 복학생 선배 B가 있었는데 나의 짝사랑 이력을 아는 절친은 B 선배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유인즉슨 B 선배 역시 A 선배 만큼 목소리가 좋을 뿐 아니라 완전 선수라는 것이다. A 선배가 바람이라면 B 선배는 태풍을 넘어 허리케인 수준이라며 이때껏 수많은 여자 선배들이 휩쓸려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여자끼리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며 금사빠인 나도 휩쓸리기  좋은 타입이라며 절대 넘어가서는 안되고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말도 걸지 말라고 했다. 그 친구의 걱정과 당부 덕분인지 몰라도 그 선배의 바람기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조심과 경계를 풀지 않았기에 그 선배의 마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십 수년 만에 사람을 조심하라는 주의를 다시 듣게 되었다. 그 말을 해 준 사람은 신랑이고 조심하라는 대상은 딸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이다. 신랑이 그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작년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딸 친구 엄마가 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워킹맘, 나이도 비슷하고 노산으로 늦게 출산했다는 공통점, 양상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느린 아이를 키우는 애환을 위로하며 지냈던 동료가 있었다. 사는 곳도 가까워서 서로 집을 방문하고 아이 용품도 주고 받고 주말에 남편, 아이 동반하여 가까운 산으로 산책도 같이 가곤 했다. 언젠가 퇴사를 하더라도 그 동료만큼은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료의 추천으로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을 같이 다니게 되었다. 동료의 아이는 등록해서 다니고 있는 상태였고, 내 아이는 같은 시간대에 샘플 수업을 신청다. 보통 아이들은 5~6세 연령이어도 대열에 맞춰 품세를 따라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느린데다 산만한  이에겐 모든 것이 도전적인 과제였다. 내 아이가 좀 더 많이 산만해서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녔. 그 모습을 보고 나니 과연 태권도를 등록하는게 나은지 고민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심란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고민하는 찰나에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한데 나더러 태권도 수업시간을 바꿔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의 산만한 모습 때문에 자기 아이에게 방해가 되고 보고 배울까봐 염려된다고 했다. 본인은 다른 스케쥴이 있어 수업 시간을 바꿀 수 없으니 이제 막 시작하는 나에게 른 타임으로 등록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면서 머릿속이 하애졌다. 그저 빨리 통화를 끝내야 겠다 생각 뿐이었다. 내 마음 속에 드는 감정은 '난 손절당했구나' 라는 서운함과 배신, 상처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다. 리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처럼 계속 남았다. '나를 만나면서 자기 아이에게 도움이 되나 안되나 계속 계산하고 있었구나' 그 약삭빠름에 믿을 사람 없다 싶었다.


예전에 ADHD 아들을 키우는 친구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영어학원을 함께 다니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 같은 반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수업 시간 바꿔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선을 넘는 무례한 요구에 기분이 무척 불쾌했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요구해도 기분이 나쁜데,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러하니 불쾌함을 너머 배신감까지 느낀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아이를 통해 맺어진 엄마들 우정은 종이짝같이 얇은 우정이며, 큰 의미를 두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아이는 둘째지만 첫째와 나이 터울이 9살이라 외동처럼 키우는 엄마였다. 아이들 학원 스케쥴이 비슷해 하교길과 놀이터에서 오며가며 자주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이 엄마와 자주 어울리다 보니 신랑들하고도 한 두번 동행하게 되었는데 이 엄마를 만나고 나서 신랑이 나에게 이 말을 했다. "00 엄마 만날 때 너무 마음 주지 마. 네가 상처받을 거 같아. 내가 보기엔 예전 00 엄마와 비슷한 스탈이야. 너는 곰같아서 친해지면 무조건 사람 믿지만 빠릿빠릿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호호 웃어도 속으로는 계산기 두드리며 자기 잇속 잘 챙긴다고."

   

아마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내가 사회물정 모르는 어린애인줄 아느냐. 나도 사회생활 할 만큼했고 사람 볼 줄 안다고~' 반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통수 호되게 맞을  만큼의 상처를 겪다보니 신랑의 조언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신랑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이 엄마와의 관계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단짝으로 잘 지내고 있다. 다만 내 마음 한 켠에는 이 우정 또한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준비하는 그런 심리 있다. 그리고 이 우정의 끝이 예전처럼 씁쓸하게 마무리될지라도 함께 했던 시간은 부정하지 말고 즐거웠던 것으로 생각하자는 마음가짐도 벌써 가지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니 예전보다는 훨씬 편해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움받을 용기보다 다시 관계맺을 용기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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