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한 동생을 만났다. 비슷한 시기 결혼을 했고, 1년 차이로 출산을 해서 이래저래 공유할 거리가 많은 동생이다. 우리 아이들 둘 다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그림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 도중에 동생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내 아이도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동생의 아이가 그린 그림은 결이 좀 달랐다. 내 아이의 그림은 색의 사용이 조화롭고 꼼꼼하게 색칠하고 사진을 찍듯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했다면 동생네 아이의 그림은 사람은 졸라맨으로 그렸지만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아이디어가 독특했다. 한마디로 "오~ 창의성이 있네?" 이런 반응이 나올 법한 그림이었다. 비전문가인 내 눈에는 그림에 대한 재능은 내 아이보다 동생네 아이가 더 있어 보였다.
"잘 그렸다. 우리 00은 이런 그림은 안 그리는데 xx는 아이디어가 좋은 거 같아."
"맞아 언니. xx는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그걸 그림으로 그려내더라고. 근데 미술 선생님 말씀이 학교 다닐 때 그림 그리면 아이디어가 팍팍 나오는데 방학 시작하니까 그런 독특함이 살짝 안 보인다고 하시더라. 스트레스받을 때 해소하려는 욕구가 생겨서 그런지 공상이나 그림이 더 잘 되나 봐"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예전에 TV나 책에서 보았던 여러 사례들이 파바박 떠올랐다. 무르팍 도사인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윤여정 배우님이 그런 말을 했다. 집을 공사하게 되어 1억이 필요했단다. 그 시기에 마침 영화를 찍게 되었고(<바람난 가족>인지 <돈의 맛>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그 돈이 필요해서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나이에 눈 질근 감고 베드신도 찍을 수 있었다고.
조앤 롤링이 이혼녀에 분유 살 돈이 없어 아기에게 맹물을 먹여가며 집필했다는 이야기도 너무나 유명하다. 조앤 롤링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면 그렇게 상상의 날개를 펴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현실이 괴롭지 않았다면 그런 창조는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비참한 일상일수록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욕구가 위대한 창작물로 이어지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태어날 때 웃으면서 태어나는 아기가 없고 인생 자체가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스트레스는 때로는 너무 큰 고통이지만 가끔씩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나를 성장시키고 창조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