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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Oct 19. 2022

아메리칸 커시브 매력에 빠지다

필기체에 대한 로망 또는 열등감... 나만 갖고 있었을까?


필기체 에피소드 하나.

몇 해전 영국 주재원 생활을 끝내고 본사로 복귀하신 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국에서의 생활과 아이들이 다녔던 국제학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부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우리 애가 이제 2학년인데 걔는 필기체를 자연스럽게 쓰더라고. 난 흉내도 못 내는데 말이야.

내 자식이지만 신기해."

그렇다.

한국에서 영어를 학습으로 접하고 배운 사람에게 필기체는 말 그대로 꼬부랑글씨이며 넘사벽이기도 하다.


필기체 에피소드 둘.

전화와 이메일로 소통하던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손 편지를 받았는데 맙소사, 한 페이지 빡빡하게 필기체로 쓰여 있었다. 도저히 해석 불가한 글자였는데, 차마 선생님한테 필기체를 못 읽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기에는 한마디로 쪽팔렸고 결국 신랑의 회사 동료 중 유학파 출신에게 부탁해서 이탤릭체 번역본(?)을 받을 수 있었다. 필기체를 읽지 못하는 것이 영어를 잘 해석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한심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필기체는 평생의 숙제처럼 언젠가는 배워야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마이키에서 <누구나 쓸 수 있는 아메리칸 커시브 원데이 클래스>를 발견했다.

뒤늦게 공지를 발견하고 다음 클래스가 열리기까지 몇 달을 더 기다려 드디어 수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닌데 초보 서울러여서 브라운 팍스 스튜디오까지 가는데 10분 지각했다.

앞부분 설명은 놓친 상태에서 바로 쓰기에 돌입했다.


이 수업에 쓰려고 만년필도 얼마 만에 꺼내보는 것인지.

(전날 밤새도록 펜촉을 물에 담가 굳은 잉크 찌꺼기를 빼낸 것은 안 비밀)

x-height와 ascender, descender 등

새로운 용어의 혼란과 60도 각도로 눕히고 곡선과 타원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것이 글씨인가 그림인가.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나오는 시간이 2시간 지나자 어라? 뭔가 좀 되어가는 느낌?

이제 겨우 감 잡았다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이제 작품 들어가시죠?"

"네...?"

"다 됩니다."


그래서 홀리듯이 시작했다. 진짜 시작하고 3시간 만에 만들어졌다. 물론 마지막에 선생님의 마법의 터치가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만든 것임.

문장은 최근에 완독한 <빨간 머리 앤>의 마지막 구절.



쓰는 동안의 힐링과 집중, 그리고 끝났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사진 찍어서 지인들한테 보여주니 다들 "오늘 처음 필기체 배워서 3시간 만에 만든 거라고?" 이런 반응이다.


한동안 모닝 루틴처럼 태백산맥 필사를 열심히 했는데 어느새 그만둔 지 몇 년째다.

그만두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한글은 쓸 때도 단조롭고, 다 쓰고 났을 때 원고지에 쓴 내 글씨가 너무 예쁘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아메리칸 커시브를 배우니 영어 성경이나 영어책을 필사하고 싶은 의욕이 아주 뿜해졌다.

글을 쓰는 것이 단순히 글씨 연습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활동, 창작활동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새로운 힐링아이템을 찾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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