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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Apr 10. 2023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것

인생의 이해

난해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렀다.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건강하셨고 장수하셨다. 103세의 연세까지 치매를 제외하고 병치레로 인한 투병생활이 전혀 없었다. 비록 요양원에서 10여 년 지내셨고 부축을 받았지만 마지막 날까지 스스로 화장실을 다녀오실 수 있었고 주무시듯 편안히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몇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고 소식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었고 가족끼리도 이만하면 호상이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장례는 부산에서 치러졌고 나는 이틀 늦게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발인과 화장하는 정을 지켜보았다.

코로나를 지나고 나서인지, 내가 마지막날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인지, 상주 역할의 외삼촌, 이모 모두 은퇴한 나이였기 때문인지  조문객은 없었고 오로지 직계가족만이 마지막을 함께 했다.


그리고 발인 후 화장터로 이동하면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진다.  화장 순서를 기다리고, 화장이 끝자리를 지켜보며 그저 기다릴 뿐이다.  기다리며 외삼촌, 외숙모, 이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외삼촌도 어느새 80세, 100세 넘어 살아계신 외할머니는 장손인  외삼촌에게 큰 숙제였던 것이다. 내가 어머니보다 먼저 가면 안 되는데...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는데... 이제 내 손으로 장례를 치렀으니 나는 맘 편히 눈감을 수 있겠다... 동생들에게도 (즉 엄마와 이모, 막내외삼촌에게도) 이제 가는 데는 순서 없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 내 심정은 그렇게 슬프지도 않고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에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상주 역할을 여러 차례 해봐서일까.


그리고 (내가 외손주이기 때문에 큰 역할은 없지만 어쨌든 상주이기에) 장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자연스레 듣게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엄마를 비롯 외삼촌, 숙모, 이모 모두 은퇴를 한 나이라 조문객도, 조의금도 많지 않았다.  내가 회사에서 받은 복지혜택인 화환, 조의금, 조의용품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조의금만으로는 장례비용을 다 처리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적자였던 셈이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제 부모님 세대의 죽음을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나이라는 것, 너무 오래 사는 것도 자식세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 장례식 비용 정도는 마련해야 된다는 것 등. 이별을 슬퍼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것보다 이런 현실적인 이슈가 더 가깝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죽음을 가까이 여기고 떠올리는 것 자체가 생을 좀 더 알차게 살아가도록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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