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좋아해서 틈나는 대로 보는데 업데이트될 때마다 챙겨보는 웹툰이 있다. 바로 닥터 앤 닥터의 육아일기이다. 보통의 육아일상툰과 차별점이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다가 엄마 의사+아빠 이공계 (맞겠지? 암튼 서울대) 박사 출신이라 대사 한 줄에도 논문까지 참고하는 전문성을 갖추고 개그코드가 맞아서 즐겨보고 있다.
작가가 꿈을 찾아가는 여정, 암투병 중에도 불굴의 의지+긍정적 마인드로 이겨내는 모습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내적 호감도와 친밀감이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귀감이 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아이의 부모라는 자리에 서게 되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한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돌봄 수업 중 갑자기 사라져서 돌봄 교사가 작가에게 연락을 했고 아빠인 저자는 학교로 달려왔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학교에 도착할 때즈음 다행히 아이를 찾았는데, 아이는 선생님께 말하지 않고 교실을 나가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작가가 학교로 달려가서 돌봄 선생님께 아이가 사라질 때까지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따진 점, 이후 아이에게 훈육을 할 때 실종과 유괴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돌봄 교실 및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 습관 (시간을 지키고, 자리를 비울 때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점)은 쏙 빠졌던 부분이다.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서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사라졌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가슴 철렁했을 그 심정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 역시도 '유별난 부모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그 에피소드에 달린 댓글 역시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피부로 느끼는 온도차이가 바로 보육이 포함되냐 빠지냐 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린이집/유치원에서는 선생님들이 아이의 작은 부분까지도 알고 있다. 급식을 잘 먹는지, 친구들과 싸우지는 않는지 확인할 수 있고 감기약을 먹여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배변 실수를 하면 씻기고 옷도 갈아입혀준다. 여벌 옷이 없으면 친구 옷을 빌려서라도 입혀준다.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실의 문턱은 꽤나 높아진다. 배변 실수를 하면 선생님이 더 이상 아이를 씻겨주고 옷을 갈아입혀주지 않는다. 이건 아이나 부모가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급식을 잘 먹었는지 굶었는지 선생님을 통해 교실에서의 상황을 일단위로 전달받기는 쉽지 않다.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선생님께 연락이 없으면 잘 지내는 것이다.
일전에 한 친구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아이에게만 초점 맞춰 살고 있는 자신의 동생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점심 급식이 선택사항이 되었는데 친구 조카의 반에서 급식을 안 먹는 아이가 조카 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담임 선생님이 교문까지 하교 지도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실로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조카 혼자 하교를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의 동생이 어떻게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있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담임선생님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화를 낸 엄마가 이상한 엄마다. 20명이 넘는 학생이 교실에 있고 그 학생들을 급식실로 인도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며, 급식을 안 먹겠다고 선택한 1명을 위해서 20여 명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미난 사실은 친구의 동생도 현재는 전업맘이지만 그전에는 학원 강사로 일하며 자기 아이만 위하는 엄마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자 본인도 똑같이 되어버리더라는 이야기다.
윗글에서 언급된 두 사람을 비난하듯 글을 썼지만 사실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도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걸 경험해 봤다. 내 아이가 밖에서 울고 돌아오면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 친구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혹시나 그 친구가 남들 몰래 내 아이를 괴롭힌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엄마라는 자리, 부모라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런가 보다.
이런저런 다양한 모습을 보면 한 개인의 위대함과 부모로서의 위대함은 다른 것 같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 뒤에는 훌륭하게 키워주신 평범한 부모님이 계시기도 하고, 당사자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훌륭한 사람이나 부모로서는 꽝인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미술사에서 빠지지 않는 피카소의 맏아들은 알코올 중독자로 삶을 마감했고 독일 문학의 아버지 괴테의 아들 역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자로 요절했다. 그들이 과연 자녀 교육을 몰랐을까? 그들의 재력과 천재성, 최고의 교수진을 뒷받침해도 자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을, 이걸 보면 부모 노릇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