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상사를 만난다면... 2
직장의 이해
에피소드 2
우리가 하는 업무를 경영진 레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업무 범위도 확장되었다. Y+2명 (나와 또 다른 동료)으로 시작했던 파트는 Y+8명까지 커졌다. 그래서 3명 일 때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아지자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주간업무가 필요해졌다. Y가 가장 선호하는 시간에 맞춰 정기적인 주간업무 시간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Y는 항상 회의 시간에 늦게 왔다. 5분 10분 지각은 늘 있는 일이었고, 회의 시작 시간에 취소하고 연기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정기적인 회의이거나 회의 일정 변경을 미리 알려주면 회의실을 예약하는 게 어렵지 않다. 갑자기 취소하고 갑자기 지금 회의하자며 다 모이라고 하면 기획부서 특성상 회의실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 타이밍에 비어있는 회의실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층으로 이동했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본인이 바쁜데 회의실 때문에 이동해야 하냐며 화를 냈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성향은 다른 팀과 회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참석자 중에 상무, 전무 임원이 시간 맞춰 회의실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장직급인 Y는 늦게 왔다. 사장 보고 외에 대부분의 회의와 보고는 조금씩 지각했다. 한두 번이면 일이 바빠서, 불가피한 일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나중에는 이것이 습관이고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고 본인은 중요한 일을 하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늦게 등장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업무 하는 중간에도 갑자기 아프리카 출장을 가야 하니 황열병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오후 2시에 후다닥 자리 정리하고 인천공항에 갔다 온 적도 있다. 호떡집에 불난 듯 난리를 쳤지만 결국 출장은 가지 않았다. 나에게 업무 메일을 보냈다고 하는데 기다려도 안 오길래 아웃룩으로 몇 달 치 수신메일을 뒤져보기도 했다. 나더러 제대로 확인한 거 맞냐고 몇 번을 다시 찾아보라고 하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아, 쏘리. 메일 초안을 써놓고 보낸다고 한 게 버튼을 잘못 눌러 임시저장돼버렸네."였다. 밤 12시에 업무 메신저를 보냈는데 급한 일이어서 그 시간에 보낸 게 아니라 본인이 그때 생각나서 까먹지 않으려고 보냈다는 에피소드 역시 여러 해프닝 중 하나였다.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일이 누적되니 정말 피로와 분노가 쌓이고 왜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부서를 옮기기로 결정을 내리고 Y와 면담을 했다. 좋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은 미리 했다. 사회생활 그 정도 했으면 알 때도 되지 않았냐, 앞으로 너도 리더로 성장하려면 000 해야 한다 등의 훈계도 들었다. 하지만 Y의 말 중에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 있었다. 바로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사무실 책상 서랍에 총을 넣어 둔다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하면 회사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헐... 이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지금 총이 없어서 그렇지 있었더라면 나 정도쯤은 총으로 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본인의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국적자도 아닌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섬찟했다. 이미 부서를 떠날 것으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런 말까지 들으니 최대한 빨리 그리고 멀리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다행히 원하는 부서로 이동하게 되어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는 대부분 사라졌고 지금은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나. 르이건 소. 패이건 그런 유형의 사람이 내 상사로 오면 영혼이 잠식당하는 만큼 별일 아닌 것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다행히 그 상사와 코드가 맞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나쁜 평판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더욱 크다. 아무쪼록 상사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조짐이 들면 참고 버티기보다는 최대한 빨리 멀어지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