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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Aug 03. 2023

나이가 주는 불편함

인생의 이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언어 발달이 느려 5세부터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상황을 제시하고 그때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을 모델링해주고 그 말을 따라 하여 구사하게끔 만드는 것이 치료의 방향이었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또래를 만났을 때 상황을 가정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다음은 일반적인 5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대화의 패턴이라고 했다.

"안녕" / "안녕"

"너 몇 살이야?" / "5살"

"나랑 같이 놀래?" / "그래" (또는 좋아)

"넌 어느 유치원 다녀?" / "나는 000 다녀"


이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며 2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는 이런 간단한 대화조차 가르쳐줘야 하는구나'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나이를 묻고 위아래를 확인하는 것은 이미 5살 때부터 (때론 그 이전부터) 시작되는 문화이구나. 이것은 한국사람  DNA에 새겨져 있는 건가?'


나이를 묻는다는 것은 호칭을 정할 때, 임표현을 쓸지 반말을 해도 될지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빠른 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족보가 꼬이게 만드는 대표적인 케이스였고, 재수생/삼수생도 있어 그야말로 케바케, 사바사였다. 대학생 때 재수, 삼수를 하고 들어온 동기를 부를 때 호칭도 제각각이었다. 반말을 해도 되고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하는 동기도 있고, 반말은 해도 되지만 이름을 부르면 기분 나쁘니 꼭 언니/오빠라고 불러달라는 동기도 있었다.  리고 좀 더 나이 많은 동기들 중에는 깍듯한 경어일 필요는 없으나 말 끝에 '요'는 붙여달라고 하는 오빠들도 있었다.


이런 호칭과 경어에 대한 복잡성은 회사 들어오면서 단순하게 정리가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경어를 쓰는 데다가 호칭에 대한 규칙도 정해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김대리, 박 과장 이런 식으로 성 뒤에 직급을 붙였고 요즘은 이름 뒤에 님이나 프로를 붙인다. 이제 나보다 후배들도 나보다 빨리 리더의 자리에 오르니 진짜 사적인 친분관계 말고는 웬만해서는 나이 관계없이 '님'이라 부르고 경어를 쓰는 게 습관화되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 일주일 동안 캄보디아로 임직원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임직원 봉사자는 서류심사를 통해 30여 명이 선발되었고 대학생봉사자도 5명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내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다행히 최고참은 아니었다. 나 위로 선배 2분이 계셨고 내 또래 1명,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후배들이었다. 신입사원도 있고 대리도 있고... 이렇게 많은 20대들과 긴 시간을 보낸 건 근 10년 만인 것 같았다. 요새는 신입사원도 잘 안 보이고 특히나 내가 일하는 기획부서는 경력직이나 부서이동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에 꽤 오랫동안 20대를 만나보지 못한 상태였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팀장을 뽑았고, 팀장의 첫 번째 제안이 봉사단원들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서 반말을 하자고 했다. 회사를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반말을 해본 적도 10년도 더 넘은 것 같다. 서로 존대어를 쓰면 관계가 서먹하고 반말을 하면 친해진다는 개념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수가 동의를 했기에 봉사활동 기간 내내 반말 쓰기가 규칙이었다.

1주일을 합숙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사이가 끈끈해졌고,  봉사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뒤풀이로 1박 2일 엠티를 가게 되었다. 술을 마시며 게임도 했고, 밤이 깊어지자  잘 사람은 자러 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실게임을 했다. 멤버 중에 이상형이 있냐, 이성 중에 누가 제일 매너가 좋으냐 그런 류의 질문을 랜덤으로 하고 소주병 뚜껑을 돌려 뚜껑이 멈춘 자리에 있던 사람이 답을 했어야 했다. 게임이 몇 차례 돌았고 가장 어린 대학생 봉사자가 당첨이 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질문은 봉사팀 내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을 한 명 지목하라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헐~~~ 이 무슨 잔인한 게임인가...' 재미로 하는 건지 클레임을 걸자고 하는 것인지 내가 요즘 사람들 놀이 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건지 잠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무슨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같이 방을 쓴 룸메이트가 코를 골아서 불편하다고 할지, 같은 팀 멤버인 오빠가 땀이 많이 나서 싫다고 할지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보았다.


그 친구가 가장 불편한 사람으로 지목한 사람은 예상을 뒤엎고 묵묵하게 봉사를 했던 맏언니, 대학생 딸을 키우고 있으신 선배님이었다. 그분은 머리에 반짝이 색실을 붙이는 기술을 배워와서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해주셨는데 일주일 동안 여자 어린이들이 줄을 섰었다. 봉사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나도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분이 왜 불편한 존재로 뽑혔는지 궁금했다. 선정된 이유는 그 선배님의 연배가 대학생 봉사자에게는 엄마, 이모와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라고 부르기도 호칭이 입에 붙지 않고 엄마/이모 생각이 나서 편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인격이나 성격을 떠나 나이 많다는 것 자체로 젊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이런저런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는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된다는 것이 아직 쉽지는 않구나 생각이 든다. 실 마흔이 넘어서부터는  위아래 5년 정도는 그 경험치가 비슷하게 느껴지고 나이가 들수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릴수록 1년 1년의 차이는 억겁의 세월로 느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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