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
인생의 이해
동갑내기 연예인 중에 이효리가 있다. 20살부터 데뷔를 한 그녀는 나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른 셀럽이면서 또 동갑이기에 자연스럽게 20여 년간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대엔 그저 예쁘지만 깍쟁이 같지 않고 털털한 성격에 인기 많으니 좋겠다고만 생각했고 30대엔 더 이상 상업광고를 찍지 않겠다는 선언에 '오~ 개념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40대 들어서 민박 프로그램이나 예능을 통해서 그 누구보다 깊은 이해심과 통찰력이 있음이 드러났다. 그녀는 돈걱정 하지 않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본인이 겪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있었다.
어느 날 인스타쇼츠를 통해 한 고등학교를 찾아 즉문즉답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효리의 촌철살인의 한마디에 여고생들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또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날리는 이효리를 보고 역시 대단하다 싶었다. 내가 봤던 쇼츠에서 기억나는 질문과 답이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제가 반장인데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했고 그에 대해 이효리는
"리더는 이끄는 게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거라 생각해"
라고 대답했다. 전직 걸그룹의 시원스러운 대답이었다.
다음 질문은
"음악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세요.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었고 이에 이효리는"네 인생을 사는 거야? 부모님 인생을 사는 거야?"로 되물었다.
이 질문을 한 학생은 '아~부모님 뜻에 휘둘리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학생이 이효리의 말을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봐 살짝 염려되었다. 왜냐하면 이효리의 한마디에 숨겨진 더 큰 의미들을 놓쳤을 것 같아서였다. 이효리가 부모님 뜻에 따르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라라고 말한 수 있는 것은 스무 살 때부터 경제적 독립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이른 사회생활, 그리고 아이돌로 섹시 솔로 가수로 대한민국 대표 셀럽으로 성공하면서 스스로 큰 부를 이루었다. 부모님께 집을 사드렸고 수천만 원대의 보험도 척척 들 수 있었다. 지금도 예능에서 '나는 돈이 많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부모님이 이효리의 진로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한다는 핑계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채 부모님께 계속 용돈을 받는다면? 당당하게 내 인생이니 상관하지 마세요 말할 수 있을까. 캥거루처럼 얹혀사는 이상 부모님의 조언과 잔소리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효리 언니의 말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멘토의 조언과 현실 사이의 갭에서 허우적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멘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조언을 맹목적으로 따를 때의 위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조언만 듣지 말고 수면 아래에 있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