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어디에나 강남은 있다.

by Mong

21세기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키워드 중 하나로 '강남'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강남이라는 단어는 우회적으로 한국의 계급사회를 대변하는 메타포가 되었다. 강남에 산다는 것은 최소한 평당 3천만 원 이상의 집에 사는, 아주 높은 확률로 대한민국의 상위 계급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상투적 표현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강남에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기 위한 인생의 레이스.

재개발 로또를 기다리며 녹물 나오는 아파트, 겹겹이 이중주차를 해 놓은 낡디 낡은 아파트에 꾸역꾸역 들어가 살기도 하고, 그 집 하나 팔면 웬만한 지방도시의 건물주가 될 수도 있는데 종부세 조금 올린다고 하면 가진 것은 수십억 그 집 한 채뿐이라며 절규한다. 그 강남 아파트에 나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은 오롯이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 대한민국 90프로의 몫일뿐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차별과 경쟁들, 그리고 그 피로감을 못 견디겠다며 떠나온 외국 땅에서도 '강남 열풍'은 한국인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듯하다.


캐나다 런던은 인구 40만의 중소 도시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과 팬셔 컬리지를 빼고는 그렇다 할 산업기반이 없는, 다소 심심한 광역 토론토의 외곽도시다. 캐나다로 이민, 엄마 유학을 떠나오는 사람들이 굳이 런던이라는 작은 도시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런던의 토론토나 밴쿠버보다 저렴한 생활비 때문일 것이다. 기후, 교육여건, 백인 비율 등을 굳이 언급하며 그래서 자기는 런던을 선택했다고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아도 결국은 그런 대도시에 들어가서 살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바로 런던이니까.


나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 처음 런던을 선택했고, 다시 런던 근처의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

처음 런던에서 아파트를 정할 때,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내가 다닐 학교,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하는 형편에 아이들 라이드 횟수를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월세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2015년 내가 선택한 아파트의 월세는 795불이었다. 방은 두 개, 유틸리티가 포함된 비용이다. 아이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팬셔컬리지까지 모두 도보로 10분 이내의 거리였다.

나름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었던 나는 얼마 되지 않아 내 아파트의 렌트비가 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았던 그 동네는 소위 런던의 이스트 지역이었고, 한국 사람들이 범죄율과 이민자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지역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자신의 자녀들이 다닐 학교를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화 해 놓고는 애들이 꼭 가야 되는 학교와 가지 말아야 되는 학교를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는 좋은 학교들에 배정받기 위해 그쪽 학군을 선택해서 집을 고른다. 하지만 사실 캐나다에는 한국과 같은 학군이 존재하지도 않고, 학업성적이나 진학률을 공식적으로 서열화해서 발표하지도 않는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로거가 그 서열을 올려놓은 것이 보편적으로 공유되는데, 사실 그 성적은 그저 영어성적 순위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ESL 프로그램이 있는 세 군데 학교의 서열은 가장 밑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ESL이 없더라도 백인 비율이 높은 지역의 학교 순위가 높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굳이 그 영어성적 서열만으로 여기에 8 학군을 만들어 냈다. 어쩌면 한국인이 있는 모든 지역에 아마 이 8 학군은 존재할 것이다. 내가 있었던 피지도 그랬으니까.


한국보다 교육 수준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 캐나다까지 아이들을 끌고 온 이유가 결국 다시 한국에서처럼 애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고, 성적 스트레스를 주고, 스펙 쌓기에 몰두하기 위해서였을까?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비록 시골 학교지만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토론토, 맥마스터, 맥길, 워털루 대학들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캐나다 교육시스템의 장점 중 하나가 학교별로 교육의 질이 그다지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신 중심의 대학 진학 시스템 때문에 고등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도 도시나 시골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캐네디언들은 우리처럼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하거나, 커뮤니티 컬리지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 그것이 곧 실패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따라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 자체가 한국처럼 치열하지도 않다. 대학 역시도 한국사람들끼리 어느 대학이 좋다 나쁘다 따지지 실제로 대학 간의 서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서 채용 경쟁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도 아니다.


한국분들이 북쪽 지역을 선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쪽이 백인 비율이 높은, 다시 말해 이민자의 비율이 낮은 지역이라는 데 있다. 한국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이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저 백인들 곁에 가 있으면 그들과 같이 주류사회에 편입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동네는 흑인이 많아서 싫고, 그쪽은 중동 사람들이 많아서 싫고, 그 아파트는 필리핀 애들이 너무 많고......

하지만 백인 동네에 간다고 한들, 그들 눈에는 한국인들도 그 많은 중동 난민, 필리핀 사람들, 흑인들, 중국인들과 같은 이방인일 뿐이고, 한국인은 그중에서도 특히 영어로 소통하기 힘든 외국인일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99.5프로의 주민이 백인이고, 내가 다녔던 학교가 있는 Sarnia는 95프로가 백인이다. 그 어느 곳보다도 백인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그곳의 인종 비율이 어떻게 되든 그저 우리는 중국인, 필리핀인과 차이가 나지 않는 똑같은 아시안이고, 그저 영어로 열심히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스스로 섬이 될 수밖에 없는 외국인일 뿐이다. 직업을 갖고 경제생활을 하는 데는 백인보다 다른 유색인종들과 섞이고 어울리는 게 더 유리할 때도 많다. 한국 사람들의 이 인종적 허위의식과 근자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결과적으로 그런 그들의 선택지는 폐쇄적인 한국인 커뮤니티다. 한국 아이들끼리 놀고 경쟁하고, 한국 엄마들끼리만 어울리는... 그래서 결국 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힘든... 그래서 또 편의점과 한국식당 외에는 사업의 스펙트럼이 아랍인들이나 필리핀 사람들처럼 넓지 않은...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끼리는 서로 이해하며 잘 지낼까?

소위 한국의 패거리 문화는 여기서도 뿌리 깊다. 종교로 나누고, 살고 있는 집의 크기로 갈리고, 학벌과 소득에 따라 끼리끼리 이합집산 하는 모습이 때로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되고 만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여기는 캐나다의 중소도시다. 집값이 토론토나 밴쿠버의 반밖에 안되고, 임대료가 저렴해서 생활비도 적게 든다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어서 이곳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무래도 다른 도시보다 많을 듯한데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다 강남 사람들 같다. 4인 가족 살림에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Costco멤버십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문.


처음, 여기에 와서..

"가라지든 어디든 백인이 하는 곳을 가세요, 유색인종들이 하는 곳에 가면 속기 쉬워요"

"차 딜러를 선택할 때 백인인지 보셔야 돼요. 다른 사람들은 사기꾼이 많거든요"

"한국 사람은 조심하세요. 사기꾼들 많으니까"

"집은 백인이 많은 곳으로 구하셔야 돼요. 안전하니까"

"마트는 코스코 가시거나, 소비스 같은 데 가세요. 거기가 신선하고 좋아요. 노프릴, 푸드베이직은 별로예요"

들었던 이런 조언들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것이었는지 해를 거듭 지나 살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내 주관적 관점에 한국인들의 생활방식은 대체로 고비용 구조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늘 곁에 있고 싶어 하는 화이트들은 달라샾, Thrifty store, 노프릴/푸드베이직 같은 저렴한 마트에 오히려 넘쳐난다. 대체로 그런 저비용 샾 들일 수록 백인의 비율이 높은 편이고, Costco에서 가장 많은 동양인을 볼 수 있다.


강남스타일을 추구하지 말고, 진짜 캐네디언 스타일을 쫓으면 어쩌면 그대들의 삶이 조금 더 느려지고, 여유 있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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