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2022년 12월 31일. 아들 나이 열아홉, 고3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스무 살, 졸업예정자가 된다. 열아홉이자 이제 스무 살을 앞둔 아들이 자랑하듯 말한다. 2023년 1월 1일 0시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다고! 뭐라고 술? 생일 안 지나도 괜찮아? 아들은 주민등록증에 04만 찍혀있으면 술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번화가 근처에서 놀다가 0시가 되는 순간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해방구 근처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 새해가 밝고, 그날이 오고, 아들은 갑자기 스무 살이 되고, 술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비단길도 아닌 술길. 각종 소주와 맥주병으로 장식한 그런 화려한 성인의 길.
아들은 스무 살이 된 첫 한 달 동안, 술기행을 부리듯 다양한 형태의 술과 관련된 행동을 연이어 해댔다. 술 마시고 토해보기, 취중진담 해보기, 해장국 먹고 속 풀기, 가족하고 술 마시기 등등. 졸업식 전날에는 친구들과 각 7병씩 소주를 마시고 들어와서 오는 길에 자신이 토를 했으며, 주사는 없었다고 보고했다. 자신의 주량이 얼마만큼이나 되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마셔 봤다는 듯이 말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렇게까지 마시지 않을 것 미라고 약속했다. 이렇게 술을 마셔봐야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는다나? 자신 몸이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다는 듯이 말했다. 제발 한 번의 도전이길 바란다며 다독였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에는 취기가 있는 채로 들어와서 엄마 나는 오늘 ’ 취중진담‘을 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옆에 누워 나를 폭 안 더니, 내가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느냐. 나는 엄마와 아빠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한다. 다만, 엄마 아빠가 바빠서 외로웠다. 하지만, 난 엄마 아빠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을 때 눈물이 핑 돌었다. 일거수일투족 관여하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으며 마음이 자립해 나가길 바랐다. 너무 바쁜 날들엔 이런 독립 지상주의가 아들을 돌보지 못하는 핑계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미안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녀석이 엄마의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쑥스러워서 말하지 못했지만,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해주니 해 준 것이 없어 부끄럽기도 하고,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도 아들은 소주를 마시러 나갔다. 어제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장국을 끓여 주는 것과 앞으로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는 낮은 수준의 잔소리 정도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고 탄탄대로라면 그렇게 큰 걱정도 없었을지 모른다. 아들은 올해 재수를 결심했다. 지난 3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복기하며, 자신이 더 철저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일 년 만 더 기회를 주길, 그리고 자신을 한 번만 믿어 달라고 말했다. 어쩌면 스무슬의 화려한 첫 달을 이렇게 무리하면서 까지 즐기는 이유는 앞으로 지낼 암담한 재수 생활을 앞두고 하는 전야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리 못하는 엄마는 아들이 속을 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 있는 재료를 뒤져본다. 아들이 스무 살인데도 아직도 집안일이 서툴어 가진 재료도 없다 보니 해장국을 끓이기 위한 것으로 겨우 찾은 것이 멸치, 계란, 파다. 냄비에 멸치와 물을 붓고 한참 끓여 육수를 만들고 육수 끓는 물에 달걀 두 알을 풀었다. 그 위에 채 썬 파를 한 움큼 넣었다. 참치액젓, 소금으로 간을 했다. 다시다가 있었다면 살짝 넣었을지 모르겠는데, 다시마가 없다. 그래도 최대한 감칠맛이 나도록 액젓과 소금을 이용하였다. 국이 완성되고, 그 옆에 국그릇과 국자를 두고 출근했다. 요리 못하는 엄마의 해장국을 아들이 제발 먹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오후 4시가 되자, 그때서야 일어난 아들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끓여준 계란 파국이 맛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내가 이 국을 끓이며 남긴 말들이 아들의 몸속으로 퍼진 걸까. 나는 아들이 맛있게 먹어준 것만으로도 기뻤다. 소주의 쓴 맛은 어른의 맛, 녹록지 않은 생활의 맛. 이제 아들이 그런 길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매 순간 결정하고 선택하고 버티어 나가야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그날에 꼭 맞는 해장국을 끓여 주고 싶다. 아들이 따끈하게 국을 먹고 아픔을 달래고, 그리고 다시 꿋꿋이 살아나갈 수 있는, 그런 날들을 내가 함께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