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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 Feb 15. 2023

시와 클래식이 내 맘 속으로 들어온다

그냥 듣는 음악, 그냥 읽는 시

건조한 내 마음에 무엇을 주면 좋을까? 먹는 것만으로 배부를 수 없는 영혼의 건조함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피부가 건조하면 수분크림을 가득 바르듯, 마음이 건조하면 무엇을 바를 수 있을까?


“클래식 방송이 참 좋아. 나는 항상 그 채널만 틀어 놓고 있어. KBS 콩 어플을 깔고 클래식 채널을 누르면 언제든 음악을 즐길 수 있지. 너도 깔아 봐! “


나는 그 자리에서 어플을 깔았지만, 한 번도 음악을 듣겠다고 어플을 실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내 마음의 영혼이 건조하여 얼굴 표정까지도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건조한 마음에 바를 수분크림 같은 무언가를 찾았고 그때 떠오른 것이 클래식 방송이었다. 어플을 켜고 음악을 들었다.


어릴 때도 멋을 부려 보려는 마음으로 클래식이나 재즈를 찾아서 듣곤 했지만, 지루했다. 계속해서 듣기가 버거워서 듣다 말곤 했고 주로 찾아 듣던 것은 인디 음악이었다. 일반 대중음악은 귀에 차지 않아 그역 시도 오래 듣지 못했는데 각자의 마음을 읊조리듯 부르는 인디음악이 좋아 그 음악으로 내 마음속을 채웠다. 음악 리스트가 빼곡했고, 매일 그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만의 아름다운 섬에 서 있는 것처럼 설렜다.


몇 년쯤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을 듣지 못했다. 들을 여유가 없었다. 험난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음악이 비집고 들어 올 공간이 없었다. 내 마음이 음악을 찾지 않았고 굉장히 오랫동안 내 플레이리스트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멈췄다. 낙타가 모아둔 수분을 섭취하며 사막에서 살아남듯이 나는 그동안 모아둔 마음의 양분을 먹으며 살았고, 이제는 남은 것이 거의 없어져버렸는지, 건조하여 메마른 기침을 가슴으로 부터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 내 메마른 가슴에 클래식이 잔잔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그 음악이 누구의 음악인지도 모르고 어떤 악기인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의 음악인지 왜 저런 음악이 탄생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어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그 음악을 듣는 내가 있고 그 음악의 흐름에 따라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수분크림 가득 얼굴에 톡톡 두드려 흡수시키듯 내 마음에 음악을 스며들게 했다. 이상했다 클래식이 지루하지 않다. 목이 말라 벌컥벌컥 물을 마시듯, 음악을 내 몸속으로 콸콸 흘러 넣었다.


“뮤지컬 온라인으로 하나 볼래? 내가 내 것 예매하면서 지인들도 보라고 몇 개 아이디를 더 만들 수 있게 했어. 볼래?”


저녁에도 회의, 아침에는 집안일, 낮에는 사무실. 온라인이라지만 온전히 2시간가량의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평일에 시간을 내어 본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뮤지컬’이라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클래식을 들으며 좋았던 감정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뮤지컬을 당장에라도 내 몸속에 흐르게 하고 싶었다. 나는 새벽잠을 덜 자고라도 그 방송을 보겠노라고 약속했고, 영상을 볼 수 있는 아이디를 받았다.


새벽 5시, 여느 때처럼 일어나서, 뮤지컬을 보기 위해 어플을 까고 아이디 비번을 입력했다. 그리고 들리는 아카펠라 소리. 사람의 소리로만 어우러지는 하모니에 푹 빠졌다. 그리고, 박완서의 소설 <그 여자네집>을 낭독하기 시작한다. 공연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 않고 시청했기 때문에 그들이 소설을 낭독하기 시작하자마자 조금 놀랐다. 뮤지컬이라고 하여 나는 연극과 음악을 결합한 것일 줄로만 알았는데, 연극과 음악과 문학을 결합한 형태의 새로운 공연이었다. 나는 귀를 쫑긋하고 그들의 낭독하는 소리를 따라갔다. 정신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집중했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으로 흘러 들어오고 이야기 마디마다 들려오는 아카펠라가 좋아서 저절로 끝까지 함께 했다.


공연을 통해 나의 귀가 또 한 번 열렸다. 문학. 박완서 소설이 담고 있는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귀를 쫑긋했다. 묘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영롱한 음악과 영롱한 문장. 내 맘 가득 퍼졌다. 물을 주지 않아 고개를 떨구었던 국화꽃이 물을 가득 주자 뿌리 끝으로 물을 빨아올려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살아나듯, 나는 그렇게 내 구겨지고 메말랐던 영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메마른 호수에 물이 다시 차올라 영롱한 깊이를 만들어 내듯이. 나도 그렇게 내 영혼의 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학과 음악. 내 마른 마음을 채워줄 희망의 포인트다. 일요일 오후 알라딘 중고 서점으로 갔다. 옆에 두고 읽을 문학 작품을 골라보기 위해서다. 문학, 그중에서도 말의 아름다움을 갈고닦는 시를 읽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큰 중고 매장에서 시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너무 협소했다. 사람들이 시를 사서 읽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중고 서점에 꽂힌 시짐들 중에 좋은 시를 골라내기가 어려웠다.


시는 시인의 이름과 제목만으로 골라야 해서 시인의 이름 다음으로 출판사도 제법 중요한 선별 지표가 된다. 출판사가 자신들의 문학적 기준에 따라 선별한 책을 시집으로 출판하기 때문에, 그 출판사가 선택한 시인이 누구일까 하고 골라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고 매장 시집 책장에서 그런 시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베스트셀러를 모아 둔 책장에서 그 안에 숨겨진 시집 찾기를 했고, 세 권의 시집을 골라냈다. 문학동네의 시집 두 권, 그리고 하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나태주의 시집이다. 앞으로 100권의 시집을 읽어 보자고 하는 다짐과 함께 3권의 시집을 구매했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다짐을 먼저한다. 오죽하면 오래된 친구도 다짐 말고 실천을 해야지 친구야.라고 뼈 때리는 농을 던질까.


모닝페이퍼 10년, 시집 100권. 내 마음이 메마르지 않도록 시와 음악을 가득 채울 것이다. 다짐이 아닌 실천으로, 오늘도 듣는다.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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