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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Aug 31. 2020

핸들커버와 초록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작은 것들이 행복이 아닐까


  아내와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가 벼르고 있던 핸들 커버를 샀다. 차를 오래 타다 보니 핸들을 싸고 있는 겉 부분이 헤어져서 가끔 작은 조각들이 떨어지기도 했고 손에 묻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핸들 커버를 하나 사서 끼워야지 했는데 이제야 사게 되었다.

  이것저것 장을 본 후 계산대를 향해 가는 길에 마트 한쪽 구석에서 팔고 있는 초록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감색 포트에서 올망졸망 크고 있는 트리안과 푸미라, 그리고 아몬드 페페를 샀다. 예전에는 누가 예쁜 화분을 준다고 해도 손사래를 쳤는데 언제부터인가 예쁜 초록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차에 짐을 싣고 바로 핸들커버 포장을 뜯어내 끼우기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거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힘을 주어 끼워 넣으려 할 때마다 핸들이 살짝 돌아가고 미끄러지기도 해서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살살 달래 가며 잘 끼워 넣었다. 새 옷을 입은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아보니 착 감기는 게 기분이 좋다. 약간 까슬까슬한 촉감도 좋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핸들 커버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고급 세단 부럽지 않다.

  집에 와서 장 본 음식들이 가득 담긴 종이상자를 번쩍 들어 부엌에 갖다 놓고 상자 맨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져 있던 포트 삼 형제를 집어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베란다 앞에 만들어 놓은 나만의 작은 정원을 조금 정리해서 포트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고 한참 자라고 있는 고추를 심은 하얀 화분 옆에 덩굴이 늘어지도록 놓아두었다. 덕분에 조금 밋밋하기도 했던 정원 오른쪽이 풍성해졌다.

  핸들커버를 새로 끼우고 새 초록이 화분을 들이면서 사실 나는 조금 들떴다. 불편하고 아쉬웠던 마음이 채워져서 그런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앞에 서서 초록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출근길에 손에 착 감기는 까슬까슬한 핸들을 잡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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