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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Sep 18. 2020

방임

누가 누구를 내버려 두었을까.


  어릴 적 국민학교 1학년, 그러니까 8살 때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온 나는 먹을 것을 찾다가 용기를 내어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살짝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곤로에 올린 뒤 엄니가 하던 데로 곤로 손잡이를 돌려 심지를 올리고 나서 성냥통을 찾아 불을 붙였다. 조금 있다 보글보글 물이 끓고 어렵게 라면 봉지를 뜯어 라면을 넣고 그렇게 난생처음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신 엄니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하루를 벌지 못하면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가난했던 그 시절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하셨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을 하시고 엄니는 시장에서 과일을 파시는 그 시간에 나와 동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서로를 의지하면서 커야 했다. 가끔 보는 아부지는 나에게 무섭고 엄하기만 한 분이셨고 괄괄하신 성격의 엄니에게 혼도 많이 났다. 두 분께 맞기도 많이 맞으면서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돌보지 못하는 아들들이 잘못될까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에 더 엄히 키우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부모님이 열심히 사신 덕에 나와 내 동생은 대학공부까지 무사히 마치고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도 하고 그래도 조금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집 안에서 달랑 두 형제가 지내면서 무섭고 힘들었을 때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은 다름 아닌 이웃집 어른들이었다. 내가 배가 너무 아파 방바닥을 뒹굴며 울고 있을 때 옆 집 민수네 엄마가 달려와 병원에 데려다주셨고 동생이 공사장 맨홀에 빠져 올라오지 못하고 소리 지르며 울고 있을 때 꺼내 주고 씻겨주신 분은 오락실 주인아저씨였다. 다른 옆 집 무용이네 어머니는 어린것들 둘이서 밥을 차려먹는 게 안쓰러우셨는지 가끔 저녁때 우리를 불러주셔서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두 형제가 엄마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려다가 불이 나서 큰 화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고 난 어린 시절의 나와 내 동생이 떠올랐다. 뉴스에는 엄마가 애들을 방임했느니, 큰 아들을 때린 적이 있느니 하면서 아동학대 정황만을 늘어놓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남편도 없이 주변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웠을 그 어머니, 몸과 마음 모두 지치고 고단하고 힘겨웠을 그 어머니를 난 비난할 수 없다. 어느 누가 그 현실과 처지에서 그러지 않았을 수 있을까? 아이들끼리만 지내 온 것, 어머니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아이들의 안전이 위태로웠던 것, 결국 아이들이 큰 화상을 입은 것, 이런 것들이 오로지 아이들 엄마만의 책임일까?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아야 하는 것이 오로지 아이들 엄마만의 의무일까?


  한참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에 혼자서 모든 삶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을 남겨두고 일터를 찾아다녀야만 했던 아이들의 엄마, 더욱이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국가는, 사회는, 우리는 무엇을 했나? 내가 아니니 내 가족이 아니니 나는 괜찮으니 눈감고 귀 막고 모른 척하면서 내버려 두기만 한 것은 아닐까?

  

  누가 누구를 방임했을까? 


  아이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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