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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Aug 27. 2020

개가 무서워요

도그포비아


상암동 달동네에 살던 때 나는 어지간히 개구쟁이였다. 동네 꼬맹이들하고 골목길과 뒷동산을 온종일 들쑤시고 다니며 말썽을 피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겁 없이 까불다가 그야말로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집으로 생각되는데 그 집 앞에는 커다란 개가-셰퍼드로 기억되는- 한 마리 묶여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그 개를 혼내주자고 선동을 해서 아이들과 주변에서 주운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그 집으로 가서 가만히 있던 개한테 작대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개는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놀리기도 하고 작대기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 개는 으르렁 거리다가 짖다가 하다가 화가 참을 수 없었는지 몸부림을 쳤는데 그러다가 개를 묶어 놓은 줄이 끊어져 버렸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내달리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나를 쫓아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제일 앞장서서 작대기로 때리며 놀려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신없이 뛰어 아무 집이나 열린 곳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닫고 있다가 조금 진정이 되니 놀라고 무서워서 한참을 집으로 가지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일인데 개 주인아저씨가 밖에서 애들이 떠들고 개가 으르렁대며 짖는 소리를 듣고 나오는데 마침 개가 목줄을 끊고 달려드는 것을 보고 급하게 쫓아와 개를 잡아 다시 끌고 갔다고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얼마 뛰지 못해 그 개한테 따라 잡혀서 물렸을 텐데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호되게 혼이 난 이후로 나는 한 동안 개가 너무 무서워서 멀리서 작은 강아지라도 보일라치면 먼 길을 돌아서 다녔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가던 길에 조그만 강아지를 만나서 외갓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꼬마야, 길을 잃었니?'라고 물어보는 어떤 아저씨 말에 차마 조그만 강아지가 무서워서 그런다고는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아저씨 손에 붙들려 파출소에 가서 경찰 아저씨들이 외갓집에 데려다 주신 적도 있다. 


이렇게 한동안 개를 무서워하는 마음은 거의 공포심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집에서 반려견과 함께 생활할 정도로 무서움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길에서 익숙하지 않은 개를 마주치면 머리칼이 곤두선다. 그래도 좋은 점은 개를 무서워하거나 나처럼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행인들이 보이면 미리 조심을 하게 되어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우리 개는 순해요.'라는 정신 나간 개 주인은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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