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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형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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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Jul 23. 2021

은팔찌와 육연발

은팔찌와 육연발 - 수갑과 38구경 권총

형사들의 기본 장비이다. (때로는 권총 대신 가스총을 가지고 나갈 때도 있긴 하지만)

은팔찌 - 사건 현장에서 범인 검거 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비이다.

범인을 잡기까지는 형사들이 쫓아가 잡는 공세의 입장이고, 범인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도주를 하는 수세의 입장이다.

하지만, 범인을 검거하는 순간 상황은 정반대로 역전된다. 범인은 적극적으로 도망을 하려고 하는 공세의 입장이고, 형사는 이를 소극적으로 막아야 하는 수세의 입장에 몰린다.

형사의 심리상태 또한 팽팽한 긴장감이 깨어지고, 상황 종료라는 안도감에 자칫 방심하기 쉽다.

범인은 붙잡힐 때까지는 거의 본능적으로 도망을 하지만 일단 잡히고 나면 냉정을 찾고 자신의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범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도망을 가려고 별의별 핑계와 수단을 다 이용한다. 그들이 형사들을 따돌리고, 때로는 때려눕히고 도망을 가려는 것이 눈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없다. 

범인 검거 후,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에 도착해서 조사를 마치고, 유치장에 입감을 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뒤꼭지를 누르는 긴장감을 잠시나마 털어낼 수 있다.

전에 내 아내가 수갑을 처음 보고는 한 번 차보다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때로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수갑 한 번 보자고 하면서 '저 녀석 저거 요즘 술도 안사고, 수갑 한 번 채워라.'하면서 장난을 친다. 그저 그렇게 농담으로 받아들여 맞장구를 쳐도 좋으련만...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난 정색을 한다.

'이것은 내 아내와 내 가족과 너희들을 포함한 선량한 사람들의 편안한 삶을 뒤흔들어놓는 더러운 범죄자의 손목에 채우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더러운 범죄자의 손목에 채웠던 수갑을 장난으로라도 채울 수 없다.'

순간 분위기는 싸 해지지만 아내나 친구 녀석들이나 내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 수갑은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장비이다.

아름다운 꽃이 콜라병이나 사이다병에 꽂혀 있는 것보다는, 어울리는 예쁜 화분에 심어져 있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수갑 또한 범인의 손목에 채워져 있어야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앞으로 몇 명의 범죄자의 손목에 채워질지 모르지만, 수갑은 내 품 속에서 다음 임무를 기다리며, 나를 닮아 조용히 세상을 향해 울고 있다.

육연발 - 38권총, 이건 수갑하고는 또 다르다. 기본적으로 총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무기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된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위해서 만약을 대비해 가지고 다니기는 하지만, 총을 쏠만한 - 총을 쏘는 것이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허락되는 - 일은 거의 없다.

범인들도 생명의 존엄성은 있는 것인데, 총을 쏴서 자칫 생명을 잃거나, 큰 부상을 입는다면 형사 또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형사 또는 민사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결코 형사에게 유리할 수 없다.

그들이 아무리 연쇄살인의 살인마라 할지라도 그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총을 쏘기 전에 반드시 가능한 제재수단을 다 동원한 뒤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세 번의 경고 뒤에 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끄적거려 놓은 글씨처럼 공식화되어 딱 떨어지면서 차근차근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다.

사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이거 해보고, 저거 해보고, 그러다 정 안되면 총을 쏴라 하는 것은 쏘지 말라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급박한 순간에 세 번의 경고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형사는 총을 쏠 수가 없다. 쏘지도 않는다.

가져 다녀봐야 써먹지도 못하고, 총 무게 때문에 허리와 가슴은 뻐근하고, 잃어버리거나 범인에게 빼앗기면 더욱 큰일이 나는...

그러나 항상 휴대하고 다니도록 규정되어 있는 권총은 실로 애물단지다.

아무튼, 권총의 총구를 누군가에게 겨누는 일이 영원히 없었으면 좋겠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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