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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Jul 23. 2021

부검

고인과의 대화

경찰 실무에서는 사람의 죽음은 병사와 변사로 나뉩니다. 병사는 고인의 죽음이 질병이나 신체의 손상, 다른 병리적인 이유로 영면하신 것이 분명한 경우를 말하고 변사는 병사 이외의 모든 죽음을 말합니다.


병사의 경우는 행정 검시라는 행정적인 절차만 거치면 장례가 가능하지만 변사는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사법절차로 들어가 검시관에 의한 검시를 거치고 검시만으로 죽음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부검을 하게 됩니다.


부검은 말이 없는 고인과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억울함은 없는지 도와드릴 일은 없는지 법의관과 형사들은 고인이 몸으로 보여주는 대화에 온 마음을 집중합니다.


예전에 써두었던 글들을 정리하다가 막내 형사 때 처음으로 부검을 참관하고 적은 글이 있어 여기에 옮깁니다.



부검 [명사][하다형 타동사] 시체를 해부하여 죽은 원인을 검사(확인) 하는 일.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다.


그러나 부검을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보다는 마치 고인이 하고 싶은 말을 듣는 대화의 시간이 아닌가 싶다.


어제 처음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지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다녀왔다. 관내에 변사사건이 있어 고인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른 아침부터 20여 대의 경찰 차량과 병원 차량이 부검실 앞 좁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대, 두 대 부검을 마친 차량들이 다시 고인들을 태우고 주차장을 떠난 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우리 차례가 되어 유족분들과 함께 부검실 안으로 들어섰다. 고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발가벗은 채 은색 철제 침대에 다소곳이 잠들어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우리와 함께 똑같이 먹고 자고 떠들고, 기뻐하고, 화내고, 사랑하고, 즐거워했을 고인은 그저 말없이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부검이 시작되고 고인은 잠시 평화로운 영면을 방해받았다. 따뜻한 피를 지녔던 고인은 한 꺼풀 한 꺼풀 옷을 벗어가면서 숫자로 계량화된다.


고인의 몸이 하나하나 수치로 환산되어 차트에 기록되고 침묵하던 진실이 법의관의 능숙한 솜씨로 조금씩 드러나게 되면서 드디어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면 고인은 그제서야 다시 영면에 든다.


차디찬 은색 철 침대에서 고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혹시 굳이 말하고 싶지 않던 속내를 남아 있는 자들이 애써 헤집어 놓은 것은 아닌지.


죽음은 슬픔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죽음 그 자체가 슬프다기보다는 죽음으로 파생되는 일련의 일들과 마음의 동요가 슬픔을 불러오는 것 같다.


고인은 가족과 친구들의 곁은 영원히 떠났다. 그것은 이제 그들과 주고받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고인은 그들과 이야기도 할 수 없고 함께 장난도 칠 수 없고, 웃어줄 수도 없고 함께 울 수도 없다. 기쁨에 겨워 함께 얼싸안을 수도 없고 화를 내며 큰 소리로 고함을 칠 수도 없고 애틋한 마음을 전할 수도 없고,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도 없다. 설레며 그들을 기다릴 수도 없고, 그들도 더 이상 고인을 기다릴 수 없음을 안다.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고인이나 유가족분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부검을 하는 것이 혹여 고인이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을 끄집어 들추어내는 것일지라도


혹시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당한 고인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떠나보낸 후 비통한 슬픔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길이기에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을 막는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이기에


그것이 형사라는 직업의 원죄요, 사명이기에


고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빠짐없이 보고 듣기 위해 그렇게 고인을 마주하고 왔다.


이제 고인이 나에게 무엇을 말한 것인지 퍼즐 조각을 맞출 일만 남았다.


숭고한 일을 하고 계시는 법의관 님들께 큰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고인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평화롭고 고요한 꿈으로 영원히 행복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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