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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Sep 12. 2021

수사경찰의 위기

수사경찰이  무너지고 있다

​수사경찰이 거의 탈진 상태다.

우리 팀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은 현재 33건.

팀원 3명이서 33건을 담당하고 있으니 1명당 11건이다.

종결하는 사건보다 접수하는 사건이 많으니 사건은 점점 쌓여만 간다.

간단히 처리되는 사건도 거의 없다. 사건이 접수되면 현장 CCTV 분석에만 빠르면 반나절, 아니면 하루 이틀이 꼬박 걸리고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얼마 전 불법 촬영 사건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쉬는 날 없이 CCTV를 쫓기도 했었다.

그러는 동안 당연히 다른 사건은 진행할 수가 없었고 급하고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압수영장이나 통신영장을 신청해 두는 정도다.

특히, 여청사건은 아동과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여러 특별법에 의해 특례 절차와 규정들을 두고 있어 기본적인 사건 접수와 피해자 조사 단계에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된다. 가명조사처리와 국선변호인 선임, 피해자 신변보호와 관련된 일들도 모두 담당 수사관의 몫이다. 또한 경찰 수사활동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가장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수사 분야이다 보니 그 긴장도와 업무에 투입되는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00가지를 잘하고도 자칫 1가지를 놓치면 크나큰 비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사이버 성폭력에 대하여는 까다롭고 어려운 디지털정보 압수수색 절차로 인해 수사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수사관의 어려움이 여청수사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강력팀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는 지능팀에서 일하는데 보이스피싱 사건이 너무 많아 휴일 없이 일하며 평일에는 매일 밤 10시가 넘어 퇴근한다. 그런데도 사건이 빠지질 않는다며 하소연을 한다.

사이버 성폭력은 그 유형에 따라 여청수사와 사이버수사가 업무를 분담하고 있는데 서로 사건을 인계할 때마다 너무나 미안해한다. 서로 엄청난 업무량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수사팀은 상반기 인사에 인력을 보강했음에도 늘 사건에 치여 살고 있다.

실종수사팀은 2명씩 조를 이루어 일근(8시간)-당직(24시간)-비번-휴무-야간(15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근무를 하고 있다. 3일에 한 번 밤을 새우고 그중에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가혹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종수사의 특성상 신고가 접수되는 순간부터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쉬는 시간 없이 현장을 누비며 꼬박 밤을 새운다. 이런 가혹한 근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후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도 조직은 후배가 채무가 있다는 이유로 채무로 인한 신변비관으로만 결론을 내리고 다 힘들다는 논리로 인원이나 근무 개선은 반 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허울뿐인 수사권 조정으로 업무량도 급증했다. 불송치하는 사건도 검찰에 기록을 송부해서 검사가 살펴보고 기록을 반환하면 경찰서 서고에 보관한다. 실제로는 불송치 사건 기록의 보관장소만 검찰청에서 경찰서로 바뀐셈이다. 이런 기형적인 수사권 조정으로 병존사건이라는 것이 생겨서 한 사건에 송치해야할 피의자와 불송치해야할 피의자가 함께 있으면 기록을 두 권으로 만들기 위해 복사하는 데에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한다. 수사역량을 높인다며 도입한 심사관 제도는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신속한 수사 진행은 어렵게 되었다. 영장 신청의 전단계로 수사심사관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법원에서 영장이 최종 발부되기까지 하루가 더 걸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에서 직접수사를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영장을 신청하거나 불송치 사건 기록을 검찰에 송부하면 보완수사 요구가 많이 내려온다. 강제수사에 착수하거나 수사를 마무리해서 종결하려고 해도 상당한 시일이 또 걸린다는 뜻이다.

경찰 업무에서 수사업무가 중요해서 수사권 조정도 하고 수사역량을 높이려고 한다면 인력과 장비에 대한 지원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사인력의 보강 없이 업무만 급증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현장의 수사관들만 닦달한다. 우리 팀은 업무용 차량도 없고 업무용 휴대전화도 없다. 수사비도 모자라서 여전히 일정 부분은 개인 돈으로 부담한다. 조직의 수뇌부와 경찰청, 도경찰청 조직은 일선의 어려움을 안다고는 하면서 개선을 위한 노력은 전혀 없다. 오히려 현장의 수사관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경찰 수사체제를 지탱하고 있다.

뉴스에 나오고 이슈가 되면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결국 현장 수사관들을 지도하고 점검해서 실수나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행태가 수사관들의 사건 기록을 점검해서 잘못한 것을 적발하고 빨리 검거하라고 닦달하는 것이다. 워크숍이니 화상회의니 현장간담회니 그럴듯한 제목을 붙이지만 결국 현장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다.

물론 수사관의 개인 역량이나 의지에 따라 사건의 방향성과 완성도가 달라지고 혹 수사관의 과오나 고의로 사건이 왜곡되거나 피해자분들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과오는 많은 업무 때문에 미처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경우다. 만성적인 초과근무로 과로에 시달리고 퇴근해서도 사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민원이 제기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베테랑 수사관들이 수사부서를 빠져나가고 있으며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지금 현장 수사팀의 현실은 마치 군 시절 못된 고참이 1,000원짜리 한 장 주면서 '야, 가서 통닭 한 마리, 담배 한 보루 사 오고 500원 거슬러와' 하는 것 같다. 아니면 팥쥐 엄마가 콩쥐에게 '오늘 저녁까지 넓은 밭을 다매고 일주일간 쌓인 빨래도 다 해서 잘 말려서 싹 다려놓고 10인분 식사도 한식 중식 양식으로 잘 차려놓아라'하는 것 같다.

사건을 처리할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대로 수사 경찰을 방치한다면 부실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사부서 기피 현상으로 경찰 수사역량도 강화는커녕 기초부터 허물어질 것이다.

지금도 몸과 영혼을 갈아 넣으며 사명감과 투지로 현장을 지켜내고 있는 수사관 동료들에게 감사와 위로와 평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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