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에는 매점이 있었다. 밥 먹고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부리나케 매점으로 달려가 라면이나 빵을 사 먹었다.
매점에서 빵을 팔던 누나가 있었는데 우리는 누나를 '빵순이'라고 불렀다. 정확한 나이는 몰랐지만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매점에서 빵을 살 때야 '빵순이'라 부르거나 반말은 하지 못했지만 우리끼리는 '빵순이'라 함부로 불렀다.
나름 지역의 명문고였던 탓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 명문대라 불리는 스카이에도 100명 넘게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치기 어린 우월주의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하굣길에 우리는 학교 후문 앞 리어카 행상 앞에 서 있던 빵순이 누나를 보았다. 누나는 리어카에 가득 쌓인 여자 속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버스 타러 가다가 누구인지 말을 꺼냈다.
'아. 빵순이 씨발 쪽팔리게 리어카에서 빤쓰랑 브라자를 사냐. 살려면 딴 데서 사든지. 학교 앞에서. 쪽팔리지도 않나?'
우리는 맞장구를 쳐가며 무슨 못 볼 걸 본 것 마냥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며 키득거렸다. 야자를 밤 10시까지 하던 시절이니 오후에 하교했던 것을 보면 아마 시험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시험을 치며 좌절했던 속상한 마음을 우리보다 못났다고 생각한 빵순이 누나를 비하하며 위안을 삼았던 것은 아닐까.
아!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른 지금에서야 그 잘못이 생각나다니.
학교는 그리고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미적분과 가정법 같은 거보다는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과 서로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먼저 가르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누나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든지 늘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한 삶을 누리시길 바란다. 그리고 비겁하지만 이 글을 빌어서 용서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