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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Jan 10. 2020

수어 찬양

듣고 있지만 듣지 못하는 것들


  성탄절 예배 때 수어 찬양으로 특송을 한 적이 있다. 청각장애인 후배 B와 함께 무대 위에 나란히 서서 '천 번을 불러도'를 수어로 불렀는데 B는 내쪽으로 살짝 틀어서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듯이 수어찬양을 했다.

  그 모습이 이상했는지 예배가 끝난 후 근처 카페 앞에서 마주친 어느 분이 이렇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농인이 수화를 더 못해요? 박자도 계속 틀리고 동작도 제대로 못 따라 하는 것 같던데요?'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잘 하지는 못하지만 유튜브에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면서 연습을 하다보니 그 노래는 수어로 제법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에 맞추어 큰 동작으로 수어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시고 내가 수화를 꽤 잘한다고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농인들과 청인들이 수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면 청인이 오히려 더 수화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청인들은 교재를 보고 배운 그대로 수어를 하기 때문에 더 정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농인들과 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큰 착각이다. 농인들은 그들의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동작이 흐르듯이 구분이 어렵고 농인마다 동작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서툴러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농인들의 수어가 훨씬 빠르고 표정도 살아 있어 정확하게 의사전달이 된다. 반면에 수어는 손짓과 표정으로 말하고 듣는 언어인데 청인들은 듣는 것만으로 대부분 의사 전달이 되기 때문에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 서툴고 어색하다.  


  수어찬양은 더 그렇다. 농인들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며 박자와 가사에 맞추어 정확한 손짓을 하기 어렵다. 잘 들리는 나야 수어 동작만 연습해서 익혀 놓으면 노래를 들으며 수어를 하면 되지만 B는 노래 전체의 진행과 박자와 가사를 모두 외워야 정확한 박자와 가사에 맞출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할까?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노래의 박자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외우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B는 무대에서 나를 보며 박자를 확인하며 해야 했기에 내 동작을 보고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 그건 듣지 못해서 그래요. 저야 노래를 들으며 맞춰서 하면 되지만, 농인들은 노래와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박자를 지켜서 수어를 하기가 어렵거든요.'

  '아아, 그렇구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듣지 못한다는 것을 깜빡했어요.' 


  청인들은 농인들을 대할 때 그들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쉽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예배를 드리며 찬송가를 부를 때도 수어로 알려주거나 찬송가를 펼쳐주지 않으면 무슨 찬송을 부르는지 모른다. 길에서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내가 뛰어가서 보여주지 않으면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청인들은 그들이 듣지 못함을 잊은 채 열심히 찬송가만 부르거나 등 뒤에서 계속 더 크게 소리만 질러 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그들이 농인임에도 수어를 더 못한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귀로 들을 수 있기에 마음으로 듣는 법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농인들이 손으로 표정으로 몸으로 말하는 것들을 소리가 아니기에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그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들과 마음으로 말하고 듣는 것이다.  


  우리는 귀로 듣고 있지만 귀로만 듣기에는 듣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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