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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Feb 14. 2020

밤을 잊은 그대에게

죽거나 혹은 다치거나


'쓱쓱 쓱쓱' 아내가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면서 도마에 김치를 올려놓고 도마질을 하는 소리를 들으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직도 눈이 때끈하고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어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들어와 거의 한나절을 잤는데도 여전히 몸이 나른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중간에 한 시간쯤 깨어 있기는 했다. 해 떨어질 때쯤 눈을 뜨고 나서도 한동안 침대에 앉아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깜빡 다시 졸기도 하다가 거실로 나왔다. 어느새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밤을 새우고 나면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때가 점점 잦아진다. 지금도 연신 하품이 쏟아진다. 진급에 큰 욕심은 없었지만 요즘은 진급해서 팀장이 되면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니 승진 시험을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초임 시절 파릇파릇한 청년 경찰은 순찰차에서 잠을 자던 부소장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리 주무시는지. 야간에 순찰차를 몰고 나가면 승무석에서 주무시기 일쑤였고 소내 대기 근무시간에도 책상에 엎드려 계시다가 누가 들어오거나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 놀라 일어나시고는 하는 일이 잦았다. 부소장님뿐 아니었다. 선배님들도 새벽 3시가 넘어 신고가 좀 잦아들면 순찰차를 세우고 의자를 살짝 뒤로 젖힌 다음 잠시 눈을 감고 쪽잠을 자고는 했다. 가끔은 코를 골며 잠에 빠진 것 같다가도 무전이 들리면 바로 눈을 뜨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니 경찰관이 어떻게 근무시간에 순찰을 돌지 않고 잠을 잘 수가 있단 말인가. 적잖이 실망도 했다. 선배들이 그렇게 눈을 감으면 나는 살짝 순찰차를 나와서 혼자서 골목길을 돌며 도보 순찰을 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잘한 짓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선배들의 행동에 실망하던 내가 선배들을 똑같이 따라 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달 정도 되었을까 눈을 감고 있는 선배 옆에서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 바깥을 응시하던 나는 어느새 고개를 밑으로 처박다가 화들짝 놀라며 깨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을 해서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24시간 꼬박 근무를 하고도 파출소 막내라서 경찰서 방범계에서 떨어진 행정업무까지 해놓고 점심 먹을 때가 되어서야 퇴근하는 일이 많았지만 새벽에도 끄떡 없이 도보 순찰까지 돌았다. 그러던 내가 두 달 정도 지나니 나도 모르게 병 걸린 닭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왜 선배님들이 새벽에 졸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교대 근무를 해오면서(일정 기간은 내근 근무를 한 경력도 있지만) 그때의 내가 얼마나 혼자 잘난 맛에 빠져 선배님들의 어려움을, 퇴직을 앞둔 부소장님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야근이 아니라 매일매일 해야 하는 야근은 20대의 건강하고 날랜 청년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벽에 고개를 꺼꾸러 뜨렸던 것이다.

야근은 힘들다. 당연하다. 밤을 새우며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은 그 피로도의 강도와 심신에 미치는 부담이 주간에 몇 시간을 더 일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더욱이 경찰의 야근은 다른 직종의 야근보다 더 힘든 점이 많다. 숙직실이나 사무실에서 대기하는 근무도 아니고 쉬고 있다가 출동을 하는 체계도 아니다. 내가 야간 근무 현장에서 만났던 여러 직업을 생각해 보자면 종합병원 응급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마도 비슷한 근무강도 일 것 같다. 경찰의 야간근무는 12시간 이상이다. 그동안 잠을 자지 못한다. 출동이 떨어지면 현장으로 달려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악의적 민원에 시달리기도 하고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멱살을 잡히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출동이 없어도 계속하여 운전을 해야 한다. 2시간 또는 4시간 정도는 소내 근무를 하기도 하는데 사무실에서 쉬는 게 아니라 관내 사건의 처리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전화를 받고 각종 민원과 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해야 하며 보고서나 서류 등을 작성해야 한다. 조용한 곳에서 쉬면서 밤을 새워도 피곤할 텐데 경찰은 온갖 장구를 착용하고 거친 현장을 누비며 민원을 해결하고 요구조자를 호송하며 범죄자를 검거한다. 출동이 없으면 쉬는 것이 아니라 순찰차를 운전하며 관내를 돌아야 한다. 정말 쉴 새 없이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출동 현장이 언제 어떻게 위험하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늘 높은 긴장도를 유지하고 근무를 하는 덕에 피로도가 높다. 주간에 해도 높은 강도의 근무를 자야만 하는 본성을 거스르면서 야간에 하고 있으니 얼마나 몸과 마음이 상하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근무가 어느 특별한 시기가 아니라 매일매일 경찰을 퇴직하기 전까지는 평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도 높은 야간 근무를 반복하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은 점점 망가져 간다. 경찰관은 야간 근무 그 자체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며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 회자되는 말 중에 '공무원 연금공단이 우리를 제일 좋아한다.'라는 말이 있다. 경찰은 대부분이 퇴직 후 몇 년 이내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아 연금을 다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경찰은 여러 직업군들 중에서 입사 시 체력과 건강이 가장 우수한 직종이지만 퇴직 시에는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는 글을 본 적도 있다. 경찰관 자살률이 다른 직업군 보다 월등히 높은 것도 오랜 기간을 야간 근무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관도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다. 어느 정도 일을 하면 쉬는 시간도 필요하고 피로가 몰려오면 안전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잘 수도 있어야 한다. 기계도 가끔 가동을 멈추고 기름칠을 하고 손보지 않으면 멈추어 서고 자동차도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한다면 엔진이 폭발해서 전부를 다 태워버릴 것이다. 야간에도 어쩔 수 없이 근무를 해야 한다면 그래도 건강을 좀 덜 해치고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근무시간에 순찰차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는 없다. 하지만 일이 하기 싫고 게을러서 근무시간에 나와 편안히 잠이나 자는 것이 아니라 하얗게 밤을 새우고 출동이 뜸해지면 밀려오는 피로와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서 이기지 못해서 고꾸라지는 것이다. 벌렁거리는 심장과 오그라드는 몸뚱이를 달래주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봐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안락하고 방해받지 않는 우리 집 안방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은 들여다보고 가는 비좁은 순찰차 안에서 앉은 채로 편안히 잠을 청하는 경찰관이 누가 그리고 어떻게 있겠는가? 어느 선배님의 말씀처럼 시민들이야 경찰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근무 시간에 잠이 든 경찰관을 보면 근무시간에 자고 있는 무능하고 무책임하니 경고를 해야겠다고 하는 것보다 밤새 얼마나 힘이 들고 고단했으면 저러고 있을까 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개선해 주는 것이 지휘부와 국가의 책무가 아닐까? 심지어 막 나가는 흉악범이라도 혹시 억울함이나 어려운 점이 있는지 잘 헤아려 살펴주라고 우리에게 지시하면서도 동료들의 어려움이나 옳지 않은 대우에 대하여는 왜 헤아려 주지 못할까. 시민의 안전을 위해 온몸과 온 마음을 내던지며 현장을 지켜내는 동료분들께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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