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형사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림폴 Mar 28. 2020

은밀한 공유

놀이나 유흥이 아닌 범죄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면 다른 사람들과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하는 것보다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 더 익숙해졌고 문서나 사진 그리고 동영상까지도 간편하게 주고받는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서로 잘 모르는 사이끼리도 SNS를 통해 사이버 세상에서 만나서 대화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 등을 공유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인터넷과 통신기기의 발달은 개인의 생활뿐 아니라 사회의 문화와 제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러한 변화에 따라 어쩌면 당연하게도 범죄 또한 사이버 공간을 바탕으로 그 유형과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로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SNS가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고 가담하는 주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음란물이나 불법적인 영상들이 물리적, 공간적 제약 없이 유통되고 있다.


  텔레그램에 이른바 N번방이라는 대화방을 만들어 아동을 포함한 여성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음란물을 제작하여 이를 공유한 사건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주범과 공범들 중 일부가 검거되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편이다. 이 참에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면 좋겠다. 성폭력 범죄는 한 사람의 영혼을 유린하고 이로 인해 평생 동안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아직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빨간책'이라고 불리는 도색잡지와 포르노 비디오 등 음란물은 책자와 비디오테이프의 형태로 유통되었으며 이를 은밀히 유통하는 상점이나 노점상을 통해 매매나 유포가 되었다. 그러던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는 이미지나 동영상 파일 형태로 유통이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웹하드나 SNS, 그리고 어플 등을 통해 유통, 소비되고 있다. 인터넷뿐 아니라 개인 미디어기기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제는 누구나 나쁜 마음만 먹으면 음란물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다양한 사이버 환경을 플랫폼으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 불법적인 음란물 콘텐츠를 제작, 유통, 소비하는 산업적인 구조로 이미 발전하였고 이 과정에서 불법 수익을 얻게 되는 관련자들이나 업소, 업체 등이 조직적으로 범죄를 은폐하고 은밀한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 소비자들이 이에 협력하는 카르텔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은밀한 디지털 성범죄의 확산에는 텔레그램과 같은 불법을 방치하고 있는 SNS와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만남 어플 등이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개인 정보의 보호와 사생활의 보장은 기본적인 인권과 관련된 중요한 가치이지만 SNS와 어플 등에서 행해지는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라면 다수의 선량한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수사기관에 협조해야 한다. 또한 이미 범죄행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 데에도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 업체는 비난받는 것은 물론 퇴출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성폭력 범죄의 기본적인 핵심은 특히 여성에 대한 인권의 문제다. 근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인구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화된 사회 속에서 그저 자신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있는 남성들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지어졌고 심지어는 죽고 사는 것마저 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었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기본적인 권리가 천명되고 여성의 권리가 많이 높아지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여성들은 많은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아직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든지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맞아야 된다'든지 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며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많은 어머니들이 있고 배우자나 남자 친구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하면서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아내와 딸들이 있다.  


  이러한 차별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되어 왔고 더 나아가 남성의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적 존재로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많은 남성들이 이러한 사회 속에서 성장하면서 이를 당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남성들조차(나를 포함하여) 때때로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며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고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인지 음란물을 돌려보거나 음담패설을 하면서 키득거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배움의 전당인 대학에서조차 신입생들에 대한 몸매와 외모 품평이 벌어지고 노래방에 가면 도우미를 불러서 놀아야 되고 룸살롱에 가면 아가씨와 2차를 나가야 하고 가끔씩은 안마시술소에 가서 2차를 받아야 하는 것이 남성들의 유흥문화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이렇게 놀 줄 알아야 남자 답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다.


  성폭력 범죄의 근절을 위해서는 엄하고 강력한 처벌과 수사역량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사회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저속한 음란 문화에 남성들이 동조하지 않는 것, 여성을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동반자로 여기고 인권을 존중하며 차별 없이 대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은밀하게 나누었던 것들이 재미있는 놀이 문화가 아니라 더럽고 추악한 범죄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IMF 외환위기,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까지 비록 범죄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성공적으로 극복되거나 극복되고 있는 것은 정부와 관련기관의 노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아무런 대가 없는 헌신이었다. 여성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하는 성폭력 범죄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땅의 아버지, 남편, 아들들의 의식 개혁과 결단,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을 잊은 그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