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 도중 아이들 엄마가 뜬금없이 한마디 툭 던진다.
"우리 애들 상견례 자리에 갈 때는 제대로 된 가방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
".....?"
큰 아이는 아직 결혼할 생각도, 여자 친구도 없는데 시가 부모 인사 때 무슨 백을 들고 갈까를 고민하는 아이 엄마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최근에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잦더니 아마도 그때 몇몇이 이른바 명품 브랜드를 들고 나온 모양이다.
"얼마 전에 하나 사다 줬잖아?"
"아니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더군다나 그 메이커는 브랜드 축에도 못 들어요"
몇 년 전 해외 출장 시 사다준 가방으로는 양에 차지 않는가 보다.
'아니 그게 얼마 짜린데!'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을 간신이 저지하고 아이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잘못 하다가는 몇백만원 그냥 날라가거나 한동안 냉전 분위기에 아침은 우유한잔과 식빵으로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명품백 대신 18k 팔찌를 대신 사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최근 공개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명품 소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지난해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0만 4000원)로, 미국의 280달러(약 34만 8000원)나 중국의 55달러(약 6만 8000원)를 따돌리고 세계 1위로 집계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명품 소비와 관련해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 중 하나이며, 한국의 명품 사랑에 명품 브랜드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독특하다. 코로나 19로 어려워지는 경제 속에서도 명품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 기존의 3-40대가 주류를 이루던 소비층이 1-20대로 연령대가 낮춰지고 있으며 명품이 한두 개 정도 없으면 이상하게 보는 문화가 되고 있다.
명품이라는 이름 뒤에는 브랜드의 자존심이 깔려있다. 대부분의 명품은 유럽에서 탄생했고 유럽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은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마지막 보루라 여기는 MZ 세대에 명품은 자존심의 다른 표현이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명품 소비는 분에 넘치는 허세를 떨거나 말도 안 되는 객기를 부린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경쟁과 비교를 통해 행복을 추구해 온 젊은 세대에게는 쉽게 포기하기 힘든 삶의 즐거움 중 하나다.
명품은 자신을 표현하는 명함이다.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자 그를 대표하는 분신 물이다. 어떤 차를 타는가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어느 브랜드를 착용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부에 목이 마른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주기도 한다.
MZ 세대에게 차는 단순히 이동수단의 의미를 벗어나 자존심과 존재의 이유다. 하루 두 끼를 라면으로 때우고 배달 알바를 뛰더라도 럭셔리 외제차는 포기할 수 없다. 차를 구입할 때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더 중요하다. 차에서 내릴 때 주변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고가의 명품으로 얻게 되는 부러움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스미스의 세 가지 부러움의 종류 중 세 번째 ‘악의적 부러움’에 가깝다. 이는 상대방에게 분노나 수치심 같은 파괴적이고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거나, 질투와 함께 부러움의 대상이 실패하거나 잘못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카푸어’로 비하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졸부’로 폄훼하기도 한다. 부러움의 이면에는 욕구나 결핍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친구를 사귀거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인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는 뜻하지 않은 외로움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 이유는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명품이 존중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타인의 눈에는 그저 사치로 보일 뿐이다. 예전에는 누가 만들었나 가 명품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품질과 내구성, 디자인 만으로 명품이라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희소성과 함께 누가 착용 하는가 가 명품의 기준이다.
부작용이 없는 타인의 긍정적 부러움은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브랜드가 되고 명품이 되어야 한다. 내가 명품을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입고 착용하는 브랜드가 명품이 되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존중하는 길이고,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자신을 신뢰하여야 한다. 부를 뛰어넘은 사람들은 명품으로 자존감을 세우지 않는다. 명품은 그저 하나의 액세서리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