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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보라 Dec 27. 2021

부모가 된다는 것

고흐의 첫걸음


부모로서 첫걸음으로
육아라는 모험 시작!



우리는 첫째 아이의 임신 소식을 베트남 여행 중에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은 테스트기를 준비했고 예상대로 두 줄이 나왔다.

놀람도 잠시 심한 입덧으로 호텔 방 화장실에서 사투를 버리니 내 등을 두드려주겠다며 걱정 가득한 남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날 것의 모습은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나가 있으라고 했고 아마 남편은 화장실 문 앞에서 보초를 서듯 얼음이 되어 내가 나올 때까지 문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더 놀라운 건 남편의 눈물이었다.

그 당시 남편을 5년째 보며

나름 남편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감 능력은 뛰어나지만

눈물은 메마른 사람이었다. ​​


“오빠 왜 우는 거야?”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

나는 솔직히 임신 소식만큼 남편의 눈물에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과 동시에 즐기고 싶었던 신혼생활은 덮어두고 막중한 책임감이 몰려왔을까. 안경까지 벗고 눈물을 닦는 모습에 남편을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

“나 괜찮아.”

​​

심한 입덧으로 속이 울렁거렸지만 힘든 나를 이해해 주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가장의 무게를 혼자 짊어든다는 생각을 안 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순간

부모로서 첫걸음이 시작된다.

​​

남편은 내가 임신하는 동안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내 손과 발이 되어주며 수고로움에 나섰고 심지어 나와 입덧도 같이 했다. 닭갈비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입덧으로 입맛이 없었는데 남편도 울렁거린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먹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찾아보고

육아서를 보며 부모의 역할과 아기의 발달을 공부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며 아기 용품을 준비하고

남편은 저녁마다 태교동화를 읽어주고

아이에게 태담을 들려주면서

새 생명과 함께 있다는 기쁨을 누렸다.

임신으로 몸 곳곳이 아프고

호르몬의 영향과

변해가는 몸을 보며

우울함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과 주위의 애정으로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

남편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아이와 함께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어쩌다 어른이 되듯이

우리는 어쩌다 부모가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첫걸음>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에 지탱하며 서있고

일을 잠시 멈춘 아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걸어올 아이를 안고 싶어서 손을 뻗고 있다.

아빠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아이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화목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아이의 첫걸음마란

엄마에게 안겨 지내다가

점차 뒤집고 기어가고 앉게 되고

결국 붙잡고 서다가 걷는 것으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세상을 향한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아이의 새로운 경험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순간이다.

푸른 하늘과 초록색으로 물든 따스한 풍경은

풋풋하고 행복한 가족을 감싸주는 듯하다.

고흐는 동생 테오가 보내준 밀레의 흑백 작품을 보고 자신의 색과 붓 터치로 다시 탄생시켰다. 고흐는 생전에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밀레 또한 그전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리아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아기 예수의 15세기 그림부터 걷는 법을 배우는 아기를 그린 렘브란트의 영향도 받았다.

밀레는 친밀한 일상을 그리고자 했으며

고흐는 그런 밀레를 존경했다.

고흐는 밀레의 모작을 총 스물한 점이나 그렸는데 이 작품을 테오에게 보내니 가장 좋아했다. 곧 태어날 조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라 기존의 어둡고 강렬한 색채가 아닌 밝고 화사한 색감으로 아름답고 따듯한 작품이 탄생했다.

동생에 대한 고마움과 조카에 대한 사랑이 전체적으로 묻어난다. 이전의 명화 육아 에세이에서도 소개했듯이 조카가 태어났을 때는 조카를 위해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작품을 선물했다.​


이 사랑 가득한 작품의 뒷면엔 대조적으로 슬픈 고흐의 현실이 있다. 작품은 행복한 가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지만 고흐는 힘든 정신병원 생활을 보냈고 살아생전 꿈꿨던 가정생활을 꾸려보지도 못하며 이 작품을 그렸던 해에 생을 마감했다.

조카에 대한 사랑도 담았지만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림 속 아빠가 되어 표현하지 않았을까.



고흐가 참고한 밀레의 원작


​​





부모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가서는 안 되는 길이기도 하다.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님은 부모가 되기 전에 스스로 자격이 있는지 체크해 보라고 하신다.


1. 남편과의 관계, 시댁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경제적 요건이 갖추어져서
결혼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어야 한다.

2. 아이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이성적으로 아이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3. 나를 버리고 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이타심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 신의진



남편은 책의 이 부분을 보고 반발했다. 부모 자격을 다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란 불완전한 존재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배우는 존재인데 완벽한 자격을 갖춘 부모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격조건에 어느 정도 충족된다고 해서 꼭 육아가 순탄하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 아무리 미래를 준비한다고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미래인 만큼 육아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잉꼬부부로 남편과 사이가 좋아도 육아를 하면 내가 사라지고 온전히 아이를 바라보며 그 전과 같은 생활이 힘들기에 갈등이 발생하고, 아이에 대한 육아 지식이 있어도 현실 육아에서는 이론을 적용하기 힘들 때도 많다.

자격을 갖추고 부모가 되기보단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진정한 부모가 되어간다.

누구나 다 처음이고 서투른 게 당연하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분하다면

부모로서 갖추어야 될 지식과 태도, 환경은

그에 맞게 차차 쌓아가면 된다.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경시하고

아동학대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부모의 자격을 갖추는 건 필요해 보인다.

부모 자격조건을 체크하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마 숱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우리는 부모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육아라는 모험이 시작됐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책임져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뭐든지 첫 시작은 설레고 기대되며

걱정과 두려움이 따라오기도 한다.

처음 부모가 된 걸 알았을 때

기쁨과 동시에 걱정도 컸던 우리가

어느새 아이 둘을 키워가고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계속된 변화와 성장과정이다.

아이도 자신의 인생에서 걸음을 떼고

끊임없이 경험하며 커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동반자와 함께

부모로서 첫걸음을 떼던 때를 생각하며

부모도 아이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육아라는 모험을 여행처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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