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에곤 실레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
<엄마도감> 권정민
지난번 쪼꼬미랑 서점에 갔다가
특이한 제목이 눈에 띄어서
그림책을 하나 보게 되었다.
보통은 부모의 입장에서 아기를 묘사하는데
이 책은 반대로 아기가 담담하게
엄마를 관찰하여 서술하고 있다.
엄마의 생김새, 몸의 구조와 기능, 몸의 변화,
먹이 활동, 수면 활동, 배변 활동 등으로
솔직하게 우리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도 내용도 신박하고 재미있어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솟았고
결국 구매하며 집으로 왔다.
적나라한 몰골의 모습에
공감되어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론 짠하고 씁쓸한 느낌도 들었다.
책을 보자마자 떠오른 작품이 있었다.
바로 숨김없이 과감하게 인간을 표현했던
표현주의 에곤 실레의 작품!
실레는 아버지가 어릴 때 성병인 매독에 걸려
돌아가신 이후로 성에 대한 트라우마와 함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그러나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극복하고 자신에 대해 집중하며
많은 자화상을 그린다.
에곤 실레만의 독특한 윤곽선과 드로잉은
비틀리고 이상하고 기괴하고
어딘가 불편한 느낌도 든다.
아름답고 예쁜 고전 미술의 인물화와 다르게
왜곡적이고 노골적이다.
작품에서는 두 사람이 보이는데
둘 다 본인을 나타내며
위의 모습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좋은 인상이지만
아래의 모습은 어딘가 화난듯한 분노와
노려보는듯한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밖으로 보이는 자아와 속에 감추고 싶은 자아가
서로를 감싸고 있다.
에곤 실레는 자화상과 누드화를 많이 그렸는데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실레의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과감하게 표현해서 적나라했고
외설스럽다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 에곤 실레 화가 자체는
인간적으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어릴 땐 여동생을 대상으로 누드화를 그렸고
발리라는 모델과 오랜 기간 동거하며 살다가
결혼할 때는 발리를 버리고
부유한 여자와 만나서 결혼한다.
심지어 결혼하면서 발리에게 연인 관계를
유지하자며 만나자고 한다.
좋은 작품을 보면 경이롭다가도
작가에 대해 알게 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위대한 화가지만
사생활까지 완벽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에곤 실레는 인간의 모습을
작품에서 진실되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뼈가 보일 듯 앙상하고
피부는 상처가 난 듯 어딘가 아파 보이기도 한다.
이는 마치 엄마의 모습과 비슷함을 느꼈다.
처음이라 서툴고 어렵고 고군분투하는
매일 아기를 위해 메말라가는 엄마의 모습.
밤낮없이 새벽에도 2, 3시간마다 일어나서
수유하던 신생아 시기를 지나 무거워진 아기를
안아주니라 손목, 어깨, 허리도 아프며
매일 24시간 철통 보안 감시 체제이다.
세계적인 거장들도 완벽하기 힘든데
완벽한 사람, 완벽한 엄마가 어디 있을까.
SNS를 보면 대단한 엄마들이 많아 보이지만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처럼
그들도 SNS를 통해서 좋은 모습만 보이고
감추고 싶은 이중적인 모습은 누구나 품고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SNS가 필요하다.
인정 욕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메마르고 힘든 엄마지만
SNS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마음껏 표현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인정받고
자존감을 챙겨 열등감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서
갓 태어난 엄마들도 함께 크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의 잠재력도 키우는
행복한 성장 과정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