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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 너머 Jun 04. 2024

어떤 엄마가 되고 싶어?

#인생1회차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라 #멋진 엄마가 되고 싶어 #엄마일기

김엄마의 자기소개서


축구 좋아하는 두 아들의 엄마

나는 아들만 둘이다. (가끔 셋이라고 하고 싶을 때가 있긴 하다...)

가끔 아이들은 김엄마라고 부른다. 

나를 뺀 세 남자들이 공통된 주제(주로 축구)로 이야기를 할 때면 약간 소외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불안을 일찌감치 예견한 나는 틈틈이 이런 날을 대비하여 노력해 왔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엔 뽀로로와 카봇, 요괴 메카드 뭐 이런 걸 공부했고

(아직도 기억나네, "까불이 까불이 이천숭이~ 귀요미 귀요미 양피곤~ 꼭꼬댁 써니꼬꼬, 뻔뻔이 뻔도야지, 개코코독 카리스마 미스터문! 멋쟁이 멋쟁이 호랑나비~ 달려라 달려라 달리마~ 번개비 우신곤, 나르는뱀 나라콘다, 폭소놀쥐 요괴는 내친구~" 이거 나름 12지신이다.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포켓몬에 입문했다. 

나름, 포켓몬고가 깔려있는 신식엄마였다.

한참 아이들이 포켓몬에 빠져 있을 때, 아빠가 이해하지 못하는 포켓몬 친구들 이야기를 아이들과 때면 괜히 뿌듯해졌다. 아이고, 유치해라...


그리고 이젠 축구선수 이름과 소속을 알아야 할 차례다. 

오늘 밤엔 무슨 경기가 있는지, 선발이 누구인지, 간밤에 골을 넣었는지... 이런 것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 선수가 어느 포지션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월드컵엔 출전했는지, 어디로 이적했는지(할 예정인지)까지는 도저히 못 외우겠다. 

아아... 바로 이 포인트에서 이제 아빠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드리블에 조언을 해주거나 축구리프팅을 옆에서 같이 해줄 수는 없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축구 경기를 같이 봐주는 것도... (이건 아빠도 포기) 

대신 축구리프팅 20개 넘었다고 자랑하면 큰 소리로 "우와~ 대단한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칭찬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 정도면 대략 아이들 보폭에 맞춰 잘 따라가고 있는 것 아닌가 내심 안도하면서도, 내일의 아이들에게는 내가 뒤쳐지진 않을까 미리부터 걱정 중이다. 




우리는 각자의 생애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는 김엄마로 불려도, 사회에서는 나름 어엿한 나만의 포지션이 있다.

자유도가 비교적 높긴 하지만 그래도 월급 받는 직장인이다. 

다만, 일거리, 공부거리를 집에까지 들고 들어와야 하는 꼬리가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아이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했던 일이라, 가끔 아이가 예민하게 굴면 '앗, 임신했을 때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랬었나'와 같은 얼토당토 하지 않은 사유를 꺼낼 만큼 임신시절의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한 부주의함을 자책할 때가 있다. 

비슷한 이유로 자책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의 작은 티끌조차 내 흠으로 만들고 싶은 이런 마음이 엄마 마음인가 싶어 이 어리석음을 그냥 두기로 한다. 


함께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적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서로 아쉬워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간이 째각이며 흘러가듯 나의 서른, 마흔도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 엮여 있으면서도 각자의 생애를 가지고 있다.




행복

가끔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묻는다. "내가 좋아, 일이 좋아?" 그럼 나도 되묻는다. 

"엄마가 좋아, 축구가 좋아?" 대답이 바로 안 나온다. 

"음, 너희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가 이 질문으로 아빠랑 많이 싸웠어. 너네도 똑같네. 흥!" 그제야 대답한다.

"당연히 엄마지~"

"이미 늦었어. 시간제한 끝났거든."

가끔 이렇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확인받는다.

사소한 이 시간이 행복하다.




목표

그러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며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엄마들이 엄마 친구 아들/딸과 내 아이를 비교하듯, 아이들도 엄마들을 비교할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다른 엄마와의 비교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의 목표는 "멋진 엄마 되기"였다. 


나는 아주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에 흠뻑 빠져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토닥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스킬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넘어지면 '혼자서 일어나 봐! 엄마 없다고 생각하고!', 

부주의해서 다치면 '오, 다음엔 이렇게 안 하겠네~ 조금 다쳐서 다행!' 이런 엄마였다... 

(이 말을 활자화하니 아이들이 서운했겠다 싶다. 아, 냉정한 엄마여...)


대한민국의 워킹맘들이 다들 그렇듯 나는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제한적이어서 양적으로 충분히 아이들에게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기 어려웠다. 

저질 체력은 육아에 가장 강력한 적이다. 


본판이 뛰어나게 아름답거나, 후천적 노력이 빼어난 편도 아니어서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예쁜 엄마로 소문나기는 이미 글렀다. 

책육아에 심취하여 당근 중고책을 철마다 사들일만한 노력은 하면서도

(사실 나는 거래예약만 성사시킬 뿐, 다른 집도 다 그렇듯 거래 자체의 성사는 아빠 몫이다) 

그 책을 밤새 머리맡에서 읽어줄 체력이 없다. 

그렇다.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뻗는 편이다......


어쩌나, 엄마로서의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뒤지고 뒤져, 고르고 골라 나의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멋진 엄마 되기!"

이건 좀 가능할 것 같다. 

착한 엄마, 좋은 엄마, 예쁜 엄마는 아무래도 허들이 좀 높아 보인다. 

타고난 것도 있어야 할 것 같고(인내심이나, 공감능력이나, 체력이나, 미모 같은?)

노력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10년은 더 (어린이에 대한)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데, 작심삼일로 끝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멋진 엄마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멋지다는 것

'멋짐'의 정의는 착하고 좋은 것보다 더 상대적이고 덜 정형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착각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멋지다'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1. 보기에  좋다. 2.  훌륭하다."

'썩'은 "보통의 정도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 


'보통'도 쉽지 않은데 '훨씬' 더 뛰어나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훌륭하다', '보기에 좋다'는 것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정도?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한' 것(착함)이나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거나 선한' 것(좋음)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정리해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무엇인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후회하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멋진 엄마로 사는 것인지


멋진 엄마 되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얘들아, 멋진 엄마 밑에 안멋진 아들 없단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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