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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큐레이터 에드가 Apr 30. 2021

내돈내산 [한국문학 독파] 이광수 무정

한국 문학 독파

줄거리가 궁금하신분을 위해 맨 밑에 줄거리 첨부해 두었습니다. 






나는 분명 한국에서 중학교 교육과정까지 마쳤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국문학 책이 없었다. 한국 교육의 현실이지싶다. 이 현실이 한편으로 다행스러웠다. 선입견조차도 생길 수 없을 정도로, 내 머릿속이 하얀 도화지 상태였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떤 선입견이 있다면 책을 접할 때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가령 말테의 수기가 극악의 난이도였으며, 누구나 읽기 쉽지 않았다는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그 책을 끝까지 독파해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펼쳤다. 한국 문학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어떤 느낌이라고 할까? 친숙한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오랜 친구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 다시 만났을 때 어제 만난 것과 같은 친숙함과 편안함이 느껴 지진다. 무정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외국 문학과 느낌이 다르다. 외국 문학은 이름과 지명부터 낯설다. 그래서 받아들이고 몰입하는 시간이 한참 걸리고, 익숙 해지는 게 쉽지 않다. 연상도 잘 안 된다. 그와 반면에 무정은 등장하는 인물도 한글표기명이라 익숙할뿐더러, 지명이나 그 안에서 풍겨 오는 감정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다만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의 고유에 말투가 조금은 낯설기는 하였다. 그 또한 어느새인가 익숙해지고, 마음속으로 그들의 말투를 따라 해 보기 시작했다. 혼자 피식거리며, 웃기까지 한다.      



  형식은 말이다. 참으로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영채와 선영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그의 모습이 미웠다. 당연히 영채를 선택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고, 그녀의 과거가 무슨 대수냐고 소리쳤다. 그런데 형식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고민을 한다. 영채가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형식에 마음이 가슴 철렁했던 것처럼 내 가슴 또한 철렁했다. 마음이 요동쳤다. 부디 살아 있어 주기를 바랬다. 



한동안 영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했다. 죽은 건 아닌가?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 요즘 나오는 드라마였으면 영채는 몇 번이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저울질을 당하며, 연거푸 고비를 넘겼겠다만, 이광수 님은 분명 영채를 그리 쉽게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순수한 아이가 된 마냥, 두 손을 모아 살아있을 영채의 모습을 기대하였다.     




 그러다가 친절한 이광수 님은 이제쯤이면 영채에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언급하노라. 내심 기대를 했다. 영채가 살아 있지 않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걱정과 안심을 동시에 했다. 영채를 언급했으며, 아직 분량이 꽤 남았기에 분명 살아있음을 으레 짐작했다. 다행히 영채는 잘 지내고 있었다. 좋은 언니와 행복이 만나 잘 지내고 있음에 나 또한 안심했다.     



 형식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인해, 그의 교육관까지 비판받지를 않기를 바라본다. 한동안 그에 교육관에 매료되어 그에게 박수의 갈채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간 배움을 통해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며, 내심 뿌듯한 마음도 가져본다.



 그리고 이 캐릭터를 만든 이광수는 어떤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을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궁금증의 증폭과 함께 캐릭터 한명 한명이 참으로 진중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까지 읽었던 문학과 비교하면, 그간 읽었던 문학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캐릭터의 성격이 명확했다. 차이가 확실한 느낌이다. 무정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의 캐릭터에서 다른 느낌이 들다기보다는, 모두 결이 비슷한 느낌이다. 미묘한 차이만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형식이 가르치는 초딩들까지 눈에 띄었다. 4급제에 5급제에 학생들 지금은 ‘초딩’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이 어쩜 저리도 애어른처럼 행동할까 싶었다. 현대 소설이었으면, 이런 진중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초등학생을 등장시키는 모험은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정은 종지부에 다다른다. 형식은 영채와 선형의 저울질에서, 결국 선형을 선택한다. 마음속으로 크게 실망을 했다. 선형을 선택하며, 미국 유학을 선택한 그의 행동을 원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은 그럴 수 있음에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별 내용이 없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우연히도 각자의 새로운 길을 떠나는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오묘하다. 사실 나는 그 둘이 만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만나고만 만다. 서로의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어른스러움이 물씬이었다.  그들은 수해에 현장을 목격하고, 수해를 당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악회를 진행한다. 이 어찌나 낭만적인 일인가. 이광수 그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느끼고 있는가? 어떻게 이런 낭만적인 내용을 마지막 장면에 넣어 둘 수 있었을까? 그 어떤 자극적인 묘사가 없이 전해오는 감동의 전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은 다짐한다. 반드시 교육하겠노라고,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서 꼭 많은 사람에게 전해보고자.     



 여담이지만 수해를 통해, 이루어진 음악회 장면은, 배움의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나아가 삶의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는 대목이었다. 배움(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바라는 것들이 궁색해지기도, 아니면 그 어떤 목적보다 진귀해지기도 한다. 그들의 배움(삶)의 목적 즉, 유학길의 목적은 요즘 시대의 사람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들이 선택한 배움의 길, 새로운 길 즉 그 유학의 길이 자신을 위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광수는 그들을 단순한 목적으로 유학길에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만히 두지 않고 깨우침을 주었다. 마지막 수해라는 사건을 통해, 그들의 유학에 목적이 자신에게 머무는 것이 아닌, 배우고 깨달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목적의 스케일이 달라졌다. 모두 다 열심히 배워, 교육을 통해 이 배움들을 전해보고자 하는 다짐을 한다. 그들의 다짐이 얼마나 순수하고, 열정적인가. 내게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이광수는 왜 수해의 장면을 넣었으며, 그들에게 교육이라는 사명감을 부여했을까? 다시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무정 줄거리

출처: 네이버 백과 

1917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한국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 경성학교의 영어교사 이형식은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 개인지도를 하다가 선형의 미모에 차차 연정을 품게 되는데,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자기를 귀여워했던 박 진사의 딸 영채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는다. 이 때 영채는 투옥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그 뒤 영채는 경성학교 배 학감에게 순결을 빼앗기자 형식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한편, 자살을 기도하였던 영채는 동경에 유학 중인 병욱을 만나 마음을 바꾸고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며, 약혼한 형식과 선형은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들은 같은 기차로 유학길을 떠나고 있었으며, 모두 학교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면 문명사상의 보급에 힘쓸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 신교육사상, 자유연애의 찬양 등이 주제를 이루어 당시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을 알리는 선구적인 의의를 지니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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