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을 위해
공부를 하는 이유는 현명하게 길을 잃기 위해서다.
공부는 길 위에서 부단히 던지는 물음을 통해
가장 나다운 길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진정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이다.
공부는 남들처럼 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평생의 탐구 과정이다.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공부 과정이
곧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유영만 <공부는 망치다> 중에서
길을 잃는 건 두렵다
스스로 길을 찾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황하고 헤매는 시간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필연을 거부한다. 두려움 때문에....
중요한 건 현명하게 길을 잃는 것이다.
유영만의 말처럼 말이다. 현명하게 길을 잃기 위해서 공부를 하야만 한다.
그냥 공부가 아니다.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한
자기다움을 찾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길이 정해진 것 마냥 살아간다. '남'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는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의문이 생긴다
" 저 사람 무슨 말을 하는 거지?"
" 저게 맞는 말인가?"
그러다가 '남들'이 나타난다. '남들'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떠들어댄다.
나의 의문은 쥐구멍으로 숨어버린다. 낯빛이 뜨겁다. 부끄럽다. 저들과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자책을 한다.
저들이 말하는 게 맞는 말이지 하고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나의 주관은 없다. 내 생각 없이 남들이 말하는 길을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 한 번씩 길을 잃을라치면 필사적으로 길 위로 다시 서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도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인지도 모르는 체 말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
"이 길 위에 끝에 내가 바라는 게 있을까?"라는 의문이 필요하다.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다.
정해진 길이 없기에 끊임없이 방황해야 한다.
정해진 길이 없기에 끊임없이 길을 찾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는 살다 보면 나다움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는 한다.
아니. 나다움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나는 내 길을 갈 거야!"라는 '용기'가 생기기 위해서
남과 다른 나다움이 필요하다.
나다움을 위한 공부는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