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생태학자 유영만은 공부는 망치다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공부 인생을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나 또한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키는 방법이 고시 합격이라 생각하고 사법고시를 공부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온한 의도로 시작한 잘못된 공부였다. 나다움을 찾기 위한 놀이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입신양명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였다. 이런 공부는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노동이다. 긴 고민과 방황 끝에 수단으로 붙잡고 있던 책들을 달밤에 불살라버리고 놀이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는 망치다 11p
그의 글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경험함을 발견해 무척이나 반가웠다.
유영만 그는. 불온한 의도로 공부를 했다고 시인한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공부에 꾀나 소질이 있었나 보다. 고시에 도전해볼 수 있을 정도였다면 말다 했다. 나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와 다르게 공부를 해본 적 없었다. 아니 해보긴 해봤다. 노력해봤지만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린 나였지만 참 현명하고 기특했다.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에 나에 머리를 수 천 번이고 쓰다듬어 주리라. 지루하고 고된 노동에서 나는 참회하게 저항했고 끊임없는 저항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내가 자주 듣던 말이 하나 있었다.
"애는 착한데 말이야."
"머리는 참 좋아요"
나의 어머니는 항상 당당했다.
나를 항변하는 외침을 서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세상의 잣대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건 착하고 건강하며 반듯하게 자라는 것.
어린 시절 나는 40여 학생 중 그저 그런 한 명이었다. 특출난 게 없었다. 외모가 잘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오. 존재감이 생기려야 생길 수 없었던, 먹을 것 만큼은 누구만큼 치열하게 사랑했던, 통통하며, 착하고, 어머니만큼은 인정한 머리 좋은 소년이었다.
평범했던 머리 좋은 소년에게 어느 날. 유영처럼만 공부 자체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계기가 찾아온다.
우선 책 읽는 재미에 빠져 공부 자체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공부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점차 공부와 깊은 사랑에 빠진 나머지 먼동이 트는 새벽녘까지 몰입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는 망치다 11p
책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책을 사랑하고 책에 쏟아붓는 열정은 마르지 않았다. 샘솟는 열정은 나를 기뻐 날뛰게 했다. 날뛰는 나는 밤을 새우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방학에는 책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번 읽는 거로 모자라 두 번 세 번. 그것도 모자라 셀 수 없이 읽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공부에 사랑에 빠지는 걸 넘어 공부에 미쳤다. 놀이로 하는 공부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공부에 투철한 저항정신을 품고 있던 내가 어떻게 공부에 사랑에 이토록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일까. 사랑에 빠지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찰나의 순간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던 설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가 인용한 문구를 다시 한번 인용한다.
유흥준 전 문화재청장에 나오는 글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사랑하게되고 내 삶은 전과 같지 않게되었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그 상대나 대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더 알기위해 공부에 빠져든다. 공부에 빠지면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인다. 그때 보이는 것은 공부하기 전에 봤던 것과 다르다. 공부는 이렇게 돌이 킬 수 없는 변화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공부는 망치다 12p
의무적으로 해야만 했던 고무적 공부에서의 저항은 나의 승리로 돌아갔다. 혁명적 과업의 가장 큰 공은 부모님이다. 나를 믿고 내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던 두분의 의연함. 부모님 덕에 놀이로서의 공부에 흠뻑 취해 살고 있다. 지금도 책 읽기를 쉬지 않고 있다. 읽고 쓰는 삶은 내 삶에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 내 삶에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흥준 전 문화재청장에 말처럼 공부는 돌이 킬 수 없는 변화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나의 변화는 계속해서 반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공부에 대한 사랑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가 인용한 문구를 다시 한번 인용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에 나오는 글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사랑하게 되고 내 삶은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그 상대나 대상에 깊은 관심을 두고, 더 알기 위해 공부에 빠져든다. 공부에 빠지면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인다. 그때 보이는 것은 공부하기 전에 봤던 것과 다르다. 공부는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의무적으로 해야만 했던 고무적 공부에서의 저항은 나의 승리로 돌아갔다. 혁명적 과업의 가장 큰 공은 부모님이다. 나를 믿고 내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던 두 분의 기다림. 기다림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더. 부모님 덕에 놀이로서의 공부에 흠뻑 취해 살고 있다. 지금도 책 읽기를 쉬지 않고 있다. 읽고 쓰는 삶은 내 삶에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 내 삶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에 말처럼 공부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나의 변화는 계속해서 반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공부에 대한 사랑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전념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장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