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어느 헌책방 중독자의 이야기

책 중독




나는 헌책방 가는 걸 즐긴다. 지나가다 헌책방을 들리면, 꼭 책 몇 권을 집어서 나온다.


참을 수 없는 나의 소유욕. 문제다. 큰 문제다. 집에 쌓여만 가는 책을 보노라면 사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책 몇 권을 들고 이미 헌책방 계산대 앞에 서 있다.


나이 지긋한 주인아주머니. 책방에서 느껴오는 연륜처럼. 아주머니에게서 풍겨오는 연륜.


정겨운 책방만큼 아주머니도 정겨웠다. 평소였으면,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걸지 않던 소심이도 말을 한마디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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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 책 많이 사러 오나요?"


아주머니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신 표정으로 차분하게 한 마디 건네주신다.


"사는 사람만 사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이 있던 친구들만 여기 와서 책을 줄곧 사가요"


"좋은 책 많으니까 천천히 둘러봐요"


아주머니는 내게 책을 더 살 것을 권한다.


아주머니에 친절함에 마지 못한 척 나는 책 한 권을 더 집어 든다.



뿌듯하다. 양손 가득한 책을 볼 때 말이다. 이럴때면 나의 과도한 '소유욕'도 애교로 넘겨준다. 언제 볼지 모를 책들을 양손에 들고, 집안에 쌓여 있는 책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문명지는 증식과 분화를 거듭하여 삶과 분리된 지식과 정보로, 지적 재산으로, 마침내 매뉴얼과 스펙으로 추락해 버렸다.


70p



문명지에서 증식된 분화의 산물을 거들떠볼 겨를이 없다. 누구를 탓하랴.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개인의 잘못인가, 아니면 읽지 못하게 만든 사회의 잘못인가.


잘잘못을 따져 누구에게 탓을 돌리자는 게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어쩌다 매뉴얼과 스펙으로 추락해 버렸는지 말이다.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환하게 밝혀주는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복되도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 시작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하지만 그 '복된 시대'는 종언을 고하였다.



별을 보고 길을 찾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별을 떠올릴 겨를이 없다. 별은 안중에도 없다.



읽을 시간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잃어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손을 뻗어줄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


방황하는 우리에게 고영숙 작가는 말 한마디를 건넨다.


절망은 금물이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절망은 금물이다.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천지라는 텍스트를 내팽개친 덕분에 사람의 길이 너무 협소해졌다는 것, 그것만 '알면' 된다. 여기서도 핵심은 아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왜 길이 막혔는지를 아는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린다. 아니,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녀의 말처럼 나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나의 현 상태를 파악했으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발을 뻗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을 걷는 건 두려운 일이다.


걱정하지 마시라. 고미숙 작가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친절히 우리에게 차근차근 두려움을 거두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길을 찾아줄 지도가 있다. 책이 바로 그것이다. 책에는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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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하늘의 경이와 땅의 후덕함, 삶의 비전에 관한 그 모든 것이, 인류가 그 지도를 찾기 위해 해온 분투와 모험이, 지나온 길과 지나가야 할 길이, 공자의 고매한 음성과 붓다의 사자후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과 디오게네스의 파격이, 조르바의 춤과 허클베리 핀의 뗏목이. 이것이 바로 별의 떨림이고 대지의 울림이다. 이 울림과 떨림 속에 인간의 살림이 있다. 천지는 자신의 지혜를 책에 실었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 책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위대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결정적인 증거다. 한낱 도구와 정보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불태웠음에도 책은 살아남아 불명의 길을 걸어왔다. 불멸의 매트릭스와 접속하고 싶다면? 읽어라! 존재의 GPS를 찾고 싶다면? 읽어라! 사람 사이의 소외를 극복하고 싶다면? 역시 읽어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당연히 읽어라! 삶을 고귀하게 해주는 모든 행위는 단언컨대 책으로 연결된다.



71p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북드라망


오늘 밤은 헌책방 아주머니의 정겨운 모습을 떠올려보며, 따듯한 차 한 잔과 별을 바라볼 여유를 가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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