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왜 어려울까?

피카소를 알려면 무엇을 알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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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을 나섰는데 거리의 풍경이 달라 진적이 있을 것이다. 한 곡의 음악을 듣고 세상의 색깔이 변한 적도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서 그럼 한 점에 이끌려 한동안 바라보았던 감흥은 긴 여운을 남긴다. 예술작품이 주는 울림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예술은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을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를 해석해 삶의 전망을 밝히는 인문학의 전위(前衛)에 있다. 예술은 인문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놓인다.



흔히들 예술은 어렵다고 여긴다. 예술을 알려면, 또는 예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피카소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그의 생애와 사상, 예술사조 등을 알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청색시대, 니큐비즘 이니 하는 전문용어들을 들먹여야 피카소의 예술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1. 예술은 왜 어려울까?



21세기 현대를 흔히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인터넷을 클릭하면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 그리고 그것들을 쫓으면서 그것이 자신의 지식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는 사람들과 그것을 앎의 가치라고 평가한다. 예술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생애와 사상이 어떻고 또 무슨 사조에 속해 있는지 나열하는 정보들로 그의 작품을 아는 것이라 내세운다. 청색시대가 무엇이고 큐비즘이 어떻고 해야 피카소를 제대로 말할 수 있다는 태도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 같은 자세로 예술작품의 본질을 다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작품을 덮고 있는 피상적인 지식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예술이 주는 감동을 제쳐둔 채 말이다. 어떤 정보나 지식이 있어야 예술작품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적인 개념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서 지식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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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을 달리 보기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왜 현대 예술은 상상치도 못한 도발적인 자극을 끊임없이 가하여 생각을 촉진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사람들에 죽어있는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예술도 상업화 되며 제 기능을 잃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성이나 논리는 감각에서 나온 이해와 정보를 바탕으로 구축된다. 그런데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일에 대한 견해인 관념은 금세 타성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상황이 변해도 틀에 박힌 생각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세상을 왜곡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렇기에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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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실질적인 것만을 추구한다면 자유로울 수도 없고 또 정신이 고양되지도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무슨 일이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일상어는 꽤 복잡한 철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이 표현을 풀어보자면, 어떤 사물이나 상황은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그 사람에게 다른 의미를 안겨 준다는 뜻이다. 나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즉 아무 관심이 없다면 그 사물이나 상황은 그에게 의미가 없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뜻까지 포함된다. 우리는 세상이 먼저 있고 나중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해석한 만큼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상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 즉 ‘해석능력’은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해석능력이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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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하는 능력이 전혀 없어서 다른 이들이나 어떤 시스템 또는 규범이 해석해준 대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세상을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일 뿐이다. 시대를 떠다니는 부표처럼 말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이 지니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때는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가 된다. 해석능력에 따라 삶의 주인과 노예가 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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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술작품은 현실과 직접 부딪쳐 탄생한다. 그렇게 태어난 뛰어난 예술작품들은 인류에게 인식하는 능력,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고 창의성을 창출할 수 있다. 그렇게 예술작품은 그 자체가 창의적이면서 동시에 예술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현실에만 함몰되지 않으면 우리 주위에 예술이 왜 존재하는지 그 까닭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3. 세상을 달리 보는 방법



21세기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자유로운 주체로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원한다면, 현재 펼쳐진 삶의 세계를 전체로서 조망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세계를 전체로서 생각하고 그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야한다. 또한 예술작품을 대하면서 길러진 해석능력, 그리고 창의성과 상상력은 세상을 읽어내는 시야가 넓어지며,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감당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러한 힘들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위한 지도이자 나침반이 될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해석해야지만 미래를 열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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