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보다 시급한 것


‘위드 코로나’보다 시급한 것


코로나19가 상륙한 지 어느덧 1년 반. 감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최근 백신 접종의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면서, ‘일상 회복’의 희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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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 삶 곳곳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익숙했던 모든 것을 다시금 생각하고, 모든 것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변화하였다. 소비 형태, 교육 형태, 만남 형태, 업무 형태 등 사실, 변화하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다. 익숙했던 것들에 충격이 가해짐으로써, 세상을 해석하는 우리의 사유 체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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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체계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소식이다. 사람들에게 당연함과 익숙함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빠른 시간 내에 적응하며, 익숙해졌다. 변화에 충격마져 익숙해졌다.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하고자 하는 삶, ‘위드 코로나’를 외치고 있다.


분명, 코로나를 통해 일상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였다. 여기까지는 좋다. 이 세상에 고정된 건 없음을 인지함은 분명 큰 변화다. 하지만 변화는 표면에 머물렀다.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말해 코로나를 통한 사유 체계의 전환은, 표면적 의문만을 남기기에 그쳤다. 사유 체계의 전환이라는 희망적인 기회의 실효성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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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명, 덜 나가고, 덜 만났고, 덜 소통하며, 극장이나 춤판이나 술자리에 덜 갔으며, 그림, 축구, 공연 따위를 덜 보았다. 분명 우리는 원하는 바를 덜어냈다. 분명 여기까지는 잘 해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덜어내지 못했다. 덜어냄이 아직 부족하다. 특히 극단으로 향하는 물질에 대한 탐욕 문제를 덜어내지 못 하였다.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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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남겼다. 일상에 대한 수 많은 의구심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의문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 기회는 만들어 주지 못 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사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측면은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가 쉽사리 인지하기가 어렵다. 물질이 이러한 경향이 크다. 물질에 대해 너무나 단순히 생각하고, 친숙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를 묻고 따지고, 뜯어 보려는게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은 물질에 대한 ‘더 많이’를 외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자기 삶을 돌아보는 성찰을 통한 철학적 지혜를 탐색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위드 코로나’를 통한 ‘일상 회복’이 아니다. ‘위드 성찰’을 통한 ‘탐욕 회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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