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 1억버는 방법

경제학도가 말해주는 주식 경험 이야기



죄송합니다. 주식으로 1억버는 방법에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이렇게해야만 주식을 통한 나의 속앓이를 했던 경험이 주목받을 듯 하여 제목을 위와같이 정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시간이 있다면 제 글을 한번 음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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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니 좋다.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생각하지 않아서 좋다. 익숙함은 무료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익숙함은 갈등을 야기한다. 익숙함이 자아내는 권태로움 때문이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그들이 빨리 올 것을 재촉한다. 거의 도착 ‘ㄱㄷ’ 상형문자로 답장이 온다. 친할수록 규칙에 관대하다. 그러려니 한다. 익숙하다.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안부는 크게 관심 없다. 안부를 묻고 구체적으로 대화를 하려 할수록 아직 친한 사이가 아니다. 그러니까 진짜 친구라 부를 수 없다. 이는 남자들 사이에 안 목적인 룰이라 할 수 있다.



친구가 익숙해지듯 연인이 익숙해지듯 가족이 익숙해지듯 일이 익숙해지듯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권태로움이 밀려온다. 밀려오는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움을 느낄 만한 매개체를 찾는다. 이는 분명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이 익숙해지면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지고 새로운 카페가 가고 싶어지고 새로운 여행지가 가고 싶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만나보고 싶어지고. 사람은 ‘새로움’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새로움’이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좋아 요가 달리는 것이다.



“야 너 00주 샀냐?” 친구 한 명이 핸드폰을 보며 묻는다.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친구 한 명이 아니라고 답한다. 이어서 “야 왜 사라고 말 안 했냐?” 라고 답하며 공격성이 담겨 있지 않은 주먹을 쥐어 내보인다. 내가 말 안 했었냐?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은 적이어서 보인다. 이를 기점으로 그들에 열띤 토론은 시작된다. 며칠간에 자신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얼마나 몰입해서 이야기하는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 자기들은 말이다.

친구의 대화 풍경을 보며 느꼈다. 삶에 새로운 자극을 찾던 중 걸려든 것이 ‘주식’이지 않았겠냐는 생각 말이다. 왜냐면 이번처럼 전 국민이 주식에 열광했던 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副)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생(生)에 있어서 부는 필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광했던 것일까? 아니면 삶의 권태로움에 새로운 자극을 찾았던 것일지 잘은 모르겠다.

7만 8만 그리고 곧 있으면 10만

‘가즈아’라고 외치는 무리. 어딜 그렇게 가자는지 모르겠다.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 모습이 간절해 보인다. 마치 경마장에서 볼법한 풍경이다. 전 재산이 걸린 종이 한 장을 쥐고, 울분을 토해내듯 자신이 고른 말의 이름을 연신 외치고 있다.




열풍이 불었다. 주식 열풍. 주식을 하지 않으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받을 정도로 말이다. 내 전공은 경제학이다. 전공이 경제학이면 주식에 대해 많은걸 알겠네요 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실망감을 안겨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저는 주식에 주자도 모릅니다. 주(酒)자라면 모를까……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말이에요. 주식은 전혀 몰라요. 많은 사람이 경제학 전공자면 당연히 주식에 대해 빠삭하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꾀나 많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나는 주식에 관심이 없었다. 사실 전공 자체에 관심이 없든 듯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전공을 싫어했었다. 이유는 숫자를 가지고 씨름하는 학문처럼 느껴져 싫증이 났었다. 누구는 그걸 모르고 경제학을 선택했냐 비웃을 수도 있지만 물론 경제학은 숫자만을 논하는 학문이 아니기도 한다고 목청껏 외치고 싶지만 여기서 부연 설명은 하지 않겠다. 한마디만 한다면 많은 사람이 숫자 이면의 것들에 대해 중요시하지 않는 풍조로 인해 경제학이 숫자 이외의 것들과 멀어지고 있다.





경마와도 같아 보이던 ‘주식’에 대해 일절 흥미가 없던 내게 위기가 찾아온다. 주식시장에 호황기가 찾아온 것. 꾸준히 주식을 했던 사람들의 콧대가 날이 갈수록 날카롭게 뻗쳐 오르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에 부러움을 사는 인증사진을 내 보인다. 그동안 시작을 미루고 있던 사람들은 땅을 치며 후회한다. (그 중 한 명이 나다)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다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겠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부의 혜택을 안겨줄 기업이 어디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한다. A 기업 주식 들어갈까? 아니야 아니야 A 기업은 줄곧 상한가를 쳤어 이제 떨어질 타이밍이야 그렇다면 B 기업 아니야 B 기업은 느낌이 안 좋아 아니면 C D E F? 어떤 기업지표가 빨간 불빛을 내뿜을지 또 어떤 기업에 지표가 파란 불빛을 토해낼지 내게 알려다오 라는 눈빛으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인생 일대의 기회가 어떻게 됐을까? 꿈만 같았던 주식시장에 호황은 끝이났다. 10만전자를 외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자신이 어느 위치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에 대한 사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있다. 경마장에서 인생 한 방을 노리던 사람들이 비침한 결과를 보고 종이를 내 던지며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과 비슷하리라. 나는 운이 좋게도 (사실 숫자에 약해서) 주식시장에 호황에도 꿋꿋이 내 갈길을 가고 있었다. (사실 게으름때문에) 앞으로도 굴복하지 않고 내 갈길을 가겠다. 누가 다가와 지금의 일생일대에 기회라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한들 나는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펴버릴지도 모른다. 급진적 표현인듯해 다른 표현을 생각해본다. 저는 인생 빠르게 갈 생각 없어요. 조금 느릴지라도 내갈길 갈테니 신경꺼주세요. 제가 귀가 워낙 얇으니 나를 흔들게 하는 말은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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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한 참뒤 지난 칼부림이 아닌 글부림에 후회가 되어 수정하려 저장된 글을 불러왔다. 다시 읽어보니 나 화가 많이 났었나부다 라는 생가을했다. 나의 화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지난날을 곱씹어보고, 또 글을 썼던 순간을 돌이켜 본다.



나는 왜 끝까지 ‘주식’을 외면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주식’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되고 열광한 사람들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을까? 경제학을 오랜 시간 공부했지만 주식 현황에 대해 견해조차 낼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자격 지심을 느꼈던 걸까? 이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글에서 비관적인 뉘앙스가 풍긴 듯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외됨이 싫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글쓴이 너도 참여하지 그랬냐 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궁금하다. 왜 내가 참여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고민은 많이 했었다. 피아노 위에 있는 메트로놈이 왼쪽과 오른쪽을 빠르게 움직이듯 나의 마음도 심하게 움직였다. 할까와 말까 사이를 말이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게을러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쫄보라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확한 이유는 아니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돈으로 인해서 삶이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주식을 시작하면 나의 삶이 파란색과 빨간색 사이에 매몰되버릴 꺼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자본’에 내 영혼을 맡기는 느낌이 들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난날의 주식열풍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단지 ‘새로운 소통 도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해야 지난날 나의 ‘찌질한 분노’에 대해 위안이 될듯하다) 스마트 폰만 멍하니 보는게 일상이 된 우리의 삶에 활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의 시간에...... 우리의 삶에...... 모두가 함께 열광할 수 있는 공통된 관심사가 또 생길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어게인 ‘주식 호항’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경제는 언제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기 때문에...... 다시 빨간 불이 뜰 시기가 온다면 그때라면 나도 기꺼이 하나의 개미로서 열심히 활동하겠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여엉차 뚠뚠 가즈아 뚠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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