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작가라고 불러야할까? 좋은 작가란??
누군가 요즘 너 뭐해 라고 물으면 나는 수줍은 얼굴로 요즘 책써 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마음속으로 어떤 내용에 책을 쓰는지 물어봐줘! 라고 외치며 상대방에 얼굴을 멀둥멀둥 쳐다보고 있다. 그러면 머지 않아 오! 대단하다. 어떤 책을 쓰는데? 라는 기대했던 말이 나온다. 그러면 나는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책 내용에대해 간략히 브리핑을 한다. 상대방은 더욱더 놀란 듯한 기색을 보이며, 작가님이네 작가님이야 라는 극존칭으로 나를 불러준다. 이 또한 의도한 바이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책을 쓰려고 모니터 앞에 앉으니 그 동안에 불려왔던 ‘작가’ 타이틀에 대한 무게를 감당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나 어쩌면 좋지? 나 정말 작가라고 불려도 될까?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예비 작가인 내가 책을 쓰기에 앞서 과연 내가 ‘작가’라고 불려도 될지 확인부터 하려 한다. 어떤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야 할까? 이 논의는 깊게 들어가면 책 한 권도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생각이 든다. 장폴 사르트를 보라.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두꺼운 책을 한권 쓰지 않았던가. 마르크스를 보라. ‘자본’에 대해 두꺼운 벽돌책 몇 권을 쓰지 않았던가. 이렇듯 고수들은 어떠한 정의를 한 번 내릴라 치면 한 두마디로 끝나는 법이 없다. 나는 고수가 아니므로 복잡한 내용들은 다 저버리고 내 스스로가 발칙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아 잠시 한 가지로는 정의를 못내리겠다. 몇 가지 더 이야기 하겠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이야기하는 존재. 답에 대해 부끄러움 없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 어떻게 하면 자신의 답이 설득력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될지 고민하는 존재. 어떤가? 납득이 되는가? 내가 내린 작가의 존재 정의다. 너무 길다고? 그렇다면 이 정의는 어떤가? ‘작가란 고민하고 문제를 던지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쓰는 자’ 그냥 쓰면 그건 개인 소장용 글이 된다. 소장용 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작가 타이틀을 부여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사실 요즘은 예전보다 작가 라는 타이틀에 위상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건 사실이다. 누구나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기에. 그러므로 누굴 작가라고 불러야해? 라는 질문은 진부하다. 누구나 작가라고 불릴 수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글을 끝낼 수 없는법. 다른 질문 하나 하겠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작가’ 타이틀도 받지 못 한 내가 내린 정의니 너그럽게 읽어봐주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 소장용 글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작가’라는 타이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 었다고 했다. 누구나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세상. 얼마나 좋은가. 아이고 김작가님 오셨어요! 이작가님도 오셨네요. 박작가님. 최작가님.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세상 정말 좋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와 저기 갓 개인 소장을 벗어나고 ‘작가’타이틀을 단 사람이다! 라고 외치며 허겁지겁 글을 잃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을 읽히고 싶은 사람은 무명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명의 시간은 장독대안의 김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깊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양가가 올라간다. 풍미가 깊어진 김치는 한 입 베어물면 바로 알 수 있다. 아니 사실 먹기 전부터 알 수 있다. 시큼한 냄새를 맡아봐도 그 놈 잘 익었네 아그작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기 전부터 알 수 있다. 숙성된 글도 마찬가지다. 물론 잘 버무려진 겉절이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나 또한 방금 막 버무린 겉절이의 싱그러움을 좋아하는 바이다. 하지만 겉절이는 오래 보관할 수 없는 법. 겉절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없는 법. 김치전 김치찌개 김치볶음 등과 같은 화려한 변신은 불가능하다. 그렇듯 ‘작가’도 처음 갓 글을 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날 것의 싱그러움이 빛을 발휘 할 수있다. 하지만 오래 갈 수는 없다. 다양하게 활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쓸 수 있는 글의 주제가 한정된다. 결국 오래남고 기억되려면 숙성의 시간 즉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땅속으로 들어가 익혀질 수 있는 숭고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깊은맛이 우러나온다. 마치 잘 익은 김치처럼. 그러니까 내 글이 남들에게 읽히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겉저리처럼 방금 막 버무린 맛도 좋지만,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희망사항 나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