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큐레이터 에드가 Nov 29. 2022

‘비교’저주에 걸린 어른을 구해줄 요술 주문

‘비교’ 저주에 걸린 어른을 구해줄 요술 주문



어린아이가 해 맑은 미소를 내보이고 있다. 엄지손가락으로 쉼 없이 영상을 넘기다가 잠시 멈추게 한다. 나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살살 녹는다. 아이의 부모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엄마 아빠는 미소를 머금은 아이에게 질문을 한다. 자존감이 뭐야? 어려운 질문을 아이에게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아이는 곧바로 입술을 뗀다.



아이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입이 요술 지팡이라도 되는 마냥 신비로운 말들을 뱉어낸다. ‘비교’라는 저주에 걸려있는 많은 어른을 치료해줄 주문을 외친다.



나는 엄마 아빠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야

최고의 걸작품이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이의 주문이 얼어있던 나의 자존감을 녹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왜냐고! 나는 최고의 걸작품이니까. 푸하하 머슥함이 밀려왔지만 썩소를 지어보며 떨쳐낸다. 


영상 마지막에 아이는 부모에게 꼭 안 긴다. 그 모습을 본 나도 엄마 아빠에게 꼭 안기고 싶어졌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나)는 자기 자신을 최고의 걸작품이라 여기지 않는 듯하다. 어떤 기준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부합한 사람은 웃고 부합하지 못한 사람은 운다. 혹은 허덕인다. 끊임없이 말이다. 슬프다.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존재 많으로도 훌륭하다. 아이가 말했듯 우리(나) 자신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최고의 걸작품이다.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왜냐면 기준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양귀비가 현시대에 태어났다면 누가 그녀를 미인이라고 불렀겠는가?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에 내 모습을 시대가 만들어낸 기준이라는 틀 안에 욱여넣을 필요가 없다. 비교는 불행을 불러온다. 하지만 멈추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법에 걸려 골골거릴 때가 있다. 그때 주문을 외워야 한다.


나는 엄마 아빠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야. 그렇기에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시 버전 

‘비교’ 저주에 걸린 어른을 구해줄 요술 주문 (brunch.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