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연재 일기_산티아고
< Burgos > D+0
거리에는 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생장부터 산티아고까지 걷는 700km 루트를 걸었다. 나는 약 30% 정도가 지난 지점인 부르고스에서 걷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 첫날 만난 사람들이 이미 지쳐 보였다.
모두들 등산할 때 쓰는 스틱을 하나씩 들고 모자를 쓰고, 등산화를 신었다. 내가 매고 있는 가방은 그중에 가장 컸고, 내가 신은 운동화는 상대적으로 주눅 들어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한 여행 경험이 묻어나는 내 수염과 머리, 그리고 지저분한 가방도 그들에게 묻혔다. 나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닌 단지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그들 무리 중 하나가 됐다.
시작하자마자 그간 한 여행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하지만 이미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인 기분도 그럭저럭 좋았다.
알베르게라는 숙소에 왔다. 순례자들만 숙박이 가능한 순례자들을 위한 스페인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소를 우리는 알베르게라고 불렀다. Hostel에 비해 시설이 좋지 않았지만, 가격이 싸서 순례자들은 보통 알베르게에서 숙박을 한다.
나의 첫 알베르게는 하룻밤에 5유로였지만, 마치 수용소에 감금되듯이 큰 방에 약 20명이 낑겨자야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 20명이 모여 반갑다는 인사도 채 나누지 못하고, 함께 숨소리를 들으며 자는 공간이었다.
방을 배정받자마자 좁은 방에 사람들의 실망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 XX들은 무뚝뚝 한데다가… 어차피 방 꽉 차는 거 아니까. 아주 매너가… 진짜 더럽다 더러워”라며 궁시렁 궁시렁대며 짐을 풀었고, 같이 온 일행은 숙소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건 너무 심한 표현이라는 듯 시무룩하게 웃어 보이며 짐을 풀어헤쳤다.
이층 침대가 양 옆으로 50cm 간격을 두고 따닥따닥 줄을 서있었다. 일층 침대에 앉으면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없을 정도로 2층 침대가 낮았다. 날씬한(사실 심하게 마른 편인) 나에겐 충분했지만, 침대의 폭은 한 사람 몸이 꽉 차는 관보다 조금 더 넓었다. 실제로 이 층 침대에서 떨어져서 다친 사람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막연하게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멕시코 국경부터 미국을 지나 캐나다까지 걸어가는 미국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인 PCT(4300km 거리를 걷는 미국 3대 장거리 트레킹)를 걸을 예정이다. 그래서 PCT의 애피타이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예전엔 어땠을지 모르나 실제로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 중에 천주교 신자는 15% 정도뿐이고 그중에서도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전날 터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밤늦게 도착한 부르고스는 터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 추웠다. 길거리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이 도시에 나뿐이었다.
시간이 늦어 10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숙소를 구해야 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 호스텔, 호텔, 알베르게 모두 자리가 없었다.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이것도 내가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인지 첫날부터 텐트에서 자게 됐다. 땅에서는 스멀스멀 한기가 올라왔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와 지나치는 자동차가 내지르는 소음이 깊은 잠을 방해했다.
아무튼 전날을 그렇게 보내고 들어온 알베르게 숙소였기에 그 작은 침대가 내게는 너무 안락하게 느껴졌다. 내일부터 길을 걸을 기대감과 사람들의 불평에 상대적인 행복감이 더해져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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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사람 - 권세욱 - facebook.com/kwonsewook
오타 사냥 - 강보혜 - @b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