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속에 쓸쓸함이 있는 뉴욕
지난주 일주일은 마치 감기에 걸린 듯 몽롱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쿄 출장을 다녀온 지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주말을 쉬지도 못하고 지인의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챙겨야 하는 몸이라 못간다는 말도 못한 채, 그렇게 끌려가듯 자리에 앉아 돈봉투만 열심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맛없는 5만원짜리 뷔폐가 말이나 되냐며 집으로 오는 내내 아내에 투정을 부렸지만, 아내는 그런 투정을 부리는 내가 귀엽다(가소롭다)는 듯 말을 잘도 받아 넘긴다.
도쿄는 나름대로의 멋이 있지만 역시나 그 멋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일만 하다가 결국 그 유명한 도쿄타워를 또 한번 먼 발치에서만 보게 되었다. 시부야의 화려한 밤보다 조용한 도쿄의 밤이 더 그리웠건만, 시부야에서 저녁을 먹고는 담배냄새나는 호텔로 들어가야 하는 고통의 반복이었다. 해외여행이든 해외출장이든 숙소를 들어가기 싫었던 적은 아마 거의 이번 도쿄출장이 유일했을 것 같다.스모킹을 좋아하는 옆 동료가 스모킹을 위해 예약한 4개의 방은 모두 스모킹룸이었다. 매너라고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 없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길들여져보자는 심산으로 여러날을 버텼지만 모두 옷가지에 담배냄새가 베이고 베여 일본에 대한 안좋은 추억만 담아왔다.
물론 뉴욕에 도착해서는 더 당황스러운 호텔과의 조우가 있었으니 일본은 그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으리라. 뉴욕은 여전히 분주하게 나를 맞이한다.
JFK 공항에서의 입국심사는 언제나 나아지려나 싶은 것이 올 때마다 잠에서 덜깬 눈을 비비면서 끊어질 듯한 허리를 부여잡은 여행객들은 또한번의 산을 넘어야 한다. 4명이 앉아서 몇백명의 입국심사를 느긋하게 하고 있는 모습에서 내가 너무 성급한 건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 나에게 돌아오고, 나도 저런 느긋함을 찾아야 하나라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하는 참 신기한 경험을 쌓게 하는 JFK공항이다. 새로운 공항을 짓기 위해 주변은 더욱 더 소란스럽다. 차라리 그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생산적이기라도 한 것이기에 다음에 올 때는 더 편안한 여행을 기약하면서 흐믓하게 뉴욕의 가을을 창문너머로 맞이한다.
뉴저지를 통해서만 갔던 맨해튼을 이번에는 바로 도달해서 당당하게도 맨해튼 타임스퀘어와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입성했다.
맨해튼, 그것도 타임스퀘어 근처의 호텔이라고? 그렇게 복잡하고 비싼 곳에 있는 호텔은 얼마나 비쌀텐데 그런델 예약했다고?
그래 모든게 다 이유가 있지, 암 그렇구 말고.
그렇게 좋은 위치에 있는 호텔이 그렇게 싼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어디랑 비교하면 제일 비슷할까?
인도? 멕시코? 체코? 폴란드? 어디지? 뭔가 비슷한 데가 있었는데.
호텔의 로비는 깨끗하고 직원도 친절했지만, 그냥 우리 모델 수준의 로비와 자판기 옆에 놓여있는 안쓰는 문같은 곳이 엘리베이터의 문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음, 홍콩이랑 비슷하겠다. 홍콩의 유스호스텔이랑 거의 흡사하다. 중경삼림에서 장만옥이 살던, 철창이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답답한 방들이 붙어 있는 그런 곳.
사실 룸 상태는 나름 깨끗하고, 침대도 포근해서 잠을 청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여서 전체적인 만족도는 3점 이상은 되었다.
외관을 봐서는 확 1점을 줘도 아깝지 않지만, 하루가 지날 수록 1점씩 올라가는건 일본에서의 스모킹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 호텔에서 묵기로 했고, 이렇게 왔으니 호텔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지금을 즐기자고 체면을 걸기로 했다.
뉴욕의 거리는 지난번에 왔을 때의 거리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고, 훨씬 더 낯설어진 느낌이다.
타임스퀘어는 예전보다 멋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그 어느곳과는 비교가 불가한 곳이었고, 록펠러센터는 아직 크리스마스트리를 미개봉하였지만 선물을 개봉하기 직전 입가에 미소가 만연한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센트럴파크의 단풍진 거리는 온갖 여유를 다 가진 사람의 향연이라 그 속에서 마음껏 여유를 부려도 표가 나지 않았다.
브룩클린 브릿지를 통해서 걸어들어가는 브룩클린 덤보의 가을은 어느때 보다 햇살이 따가웠다. 그 익숙해져버린 항구의 까페들과 아이스크림샵은 이제 사람이 줄어들어 파리가 날리고, 1시간씩 기다려야 한다는 유명한 피자집은 평일 낮이라 그런지 대기는 커녕 들어가서도 마음껏 테이블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뉴욕의 지하철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파리의 지하철과 비교되는 뉴욕의 지하철을 처음 경험해 보고는 파리의 지하철이 한수위라는 아주 쉬운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악명높은 파리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청결했고, 오히려 뉴욕보다 훨씬 더 환승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뉴욕은 지하철을 왜 운행하는지 모를 정도로 지하철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숙시민을 위한 이동하는 숙소일 뿐인건지, 너무나 불편하고 지저분함에 좋지 않은 기억만 가지고 가게 된다.
그렇게 뉴욕은 소란스럽고, 때로는 지저분하지만, 가장 깨끗하고 화려한 곳이며, 어느 곳보다 럭셔리함이 넘치는 도시다.
그런 뉴욕을 이번에 마음껏 경험하고 와보니, 뉴욕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된다.
한때 내가 제일 사랑하던 도시였던 뉴욕,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된 도시 파리, 그보다 더 사랑하는 스위스.
뉴욕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저 잠시 경험하기에 충분한 도시일 뿐이다. 뉴욕의 그 복잡함과 어지러움이 나에게 친근감으로 다가올리 없고, 가족이 없는 뉴욕은 노숙자들의 천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뉴욕은 사랑스러운 도시이고, 사랑을 느끼기에 좋은 도시임에는 분명하다.
그건 내가 누굴 만나고 어떤 걸 느끼느냐의 문제일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 없고,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전제로 시작된 여행은 더 이상 사랑을 찾지 않아서 그런지 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다.
난 뉴욕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뉴욕을 떠나오니 더 좋아진다.
다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뉴욕이 참 좋다.
다시 가족과 찾을 수 있는 곳이 뉴욕이라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