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우리의 시간들] 7. 밤의 도시, 프라하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시간

by 유니버스

프라하의 아침은 상쾌했다.

아침부터 식사 준비로 분주한 식당은 아담했고, 여행객들로 꽉 차 있었다.

여행객들이라고 해봐야 사실 4명~5명 정도라 같이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라 아늑했다.

아침식사는 그동안 피자, 소시지, 크루아상, 뷔페 등으로 한식이 그리웠던 우리에게 불고기와 잡채, 김과 김치, 국과 따끈한 흰쌀밥이 나왔다.

한식이 이렇게 빨리 그리워지리라곤 생각을 못했지만, 한식을 보자마자 우리는 너무나 기쁘게 들이켜듯이 흡입했다. 워낙 또 주인께서 실력도 좋으시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정말 들이켰다.

앞으로 더 어떻게 한식 없이 살아야 할지, 핀란드에서는 연어만 먹고 산다는 소문이 있던데 과연 그 삶이 가능할까 걱정이었다.




이른 출발을 한 여행객들은 식사를 마치고 떠났고, 그나마 가족여행객은 우리뿐이라 그런지 우리가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서 여유를 즐기면서 먹었다. 우린 관광보다는 여유를 즐기는 여행이 테마이기 때문에 급하게 이것저것을 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준비하고 나서서 우리는 주변을 일단 돌면서 구경을 하고, 프라하 성으로 간다.

일단 싼 수수료로 유명한 환전소에 줄을 서서, 모든 한국인들이 다한다는 것도 따라 해 보고, 한국인들과도 잠시 수다를 나누었다. (어디서 왔어요? 전 부산이요, 전 목표요, 전 광주, 아 그래요? 신기하네)


아침 식사를 여유 있게 해서인지 거리를 걷는 우리의 모습은 여유 있었지만, 도시의 아침 풍경은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분주했다. 이내 바쁜 시간이 끝나고 나니 한산해진 거리가 보이고, 우리는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프라하의 아침은 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뮤지움을 보고는 다시 돌아 광장으로 내려오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밤에는 그렇게 시끄러운 동네며 흑인들이 나와서 이상한 딱지를 돌리는 곳이지만, 아침이 되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덥지 않은 날씨였지만, 여전히 햇살은 맑았고 거리에서 서성거리기에는 따가웠다.




우리도 이제는 프라하성으로 가야 겠다는 생각에 근처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표를 끊고, 까를교 건너에 있는 프라하성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까를교 입구까지 갔다.

진짜 관광은 까를교로 부터 시작되니까 반드시 까를교를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정말 깊었다. 경사가 거의 70도 정도 수준으로 느껴질만큼 깊고 긴 에스컬레이터도 우리에겐 신기한 광경이었다.

서울로 치면, 공항고속 열차를 타기 위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2배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싶다.

프라하 성으로 가는 지하철은 나름 깨끗하고 여러 인종들이 섞여있는 재밌는 모습들이었다.

서로를 힐끗 쳐다보고는 쟤는 어디서 왔을거야라고 속삭이듯, 즐거운 대화들이 이어진다.


10분을 걸어 까를교 입구에 도착한 후, 사진을 찍어대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까를교를 건넜다.

예전 출장때는 추운 날씨로 인해 까를교를 건너다가 후다닥 프라하성까지만 보고 내려온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다행히 가족들과 같이 좋은 날씨에서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더워진다.)

날씨는 여름과 가을날씨의 중간정도 되는 수준에서 왔다갔다했다.

까를교에는 여러 성인의 조각상이 완벽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서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 모습도, 성인들의 모습도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연신 덥다는 말을 하는 딸을 위해, 프라하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거대한 '굴뚝빵 아이스크림'을 선물했다. 입은 이렇게 찢어져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사이에 더워진 날씨탓에 아이스크림은 흘러내린다.

잠시 땀을 식힌 우리는 프라하성을 보고 내려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발맞춰 같이 걸음을 옮겼다.

성의 모습보다 다리 아픈게 더 신경쓰이는 딸, 아내는 운동화를 제대로 챙겨서 인지 걷는게 가벼워보이고 얼굴은 어느때보다 밝아 보인다. 최대한 많이 쉬어가며 도착한 프라하성.




도착하자마자, 성당을 구경하기도 전에 화장실부터 찾았다.

역시 유료 화장실 앞에서 동전이 없어 동전을 바꾸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어 급한 딸의 불을 끈 다음, 나도 여유를 찾았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여행하기에는 무리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보다 훨씬 더 씩씩하게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왜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실 많은 걱정을 했지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빠른 것 같다.

괜한 걱정은 접어두고 여행은 많이 할수록 가족의 추억과 체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처음 맞이해주는 성당은 성비투스 성당, 600년에 걸쳐서 지어진 이 성당은 겉에서 보기에도 웅장함에 압도당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 장엄함과 화려함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종교가 카톨릭인 우리는 성당 안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기도를 쏟아낸다. 여행지에서의 안녕을 위해..

프라하성에서의 교대식까지 본 후, 성 곳곳을 구경했다.

점심을 위해 프라하성 내의 작은 식당을 찾아 익숙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뭐 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라 특별히 맛집을 찾을 힘도 없는 우린 그저 배를 채웠다.


역시 프라하성은 낮보단 밤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성의 특성상 오르막길이 많고 유럽의 특성상 돌로 된 바닥이 많아 그런지 걷는 것이 불편하다.

발이 아파 쉼과 걷기를 반복해 가며 메트로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뭔가 모를 지침에 숙소로 가고 싶다는 무언의, 아니 외침을 듣고는 힘없이 메트로에 앉아 프라하성과 아쉽게 안녕했다. 딸은 이제 메트로 의자에 기대 졸고 있다.

메트로에서 내린 우리는 프라하 시장으로 갔다. 아니 내가 끌고갔다.

거기엔 내가 소개해 줄 많은 기념품점이 있고, 먹을 거리도 많아 꼭 같이 가보고 싶었다.

골목을 지나 맞이한 프라하시장에서는 사실 쓸만한 기념품은 다 메이드인 차이나로 조잡해 보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건 너무 비싸보이기도 해서, 코리안 특수인가 하기도 했다.


최고의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 딸이 환호했던, 덴마크의 다이소로 불리는, 'Flying Tiger'.

우리로 따지면 다이소, 핫트랙스 정도되겠지만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과 디자인이 탁월해 쓸어담기를 수분, 가격은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결국 우리는 거기서 다양한 선물거리를 충전하고 나왔다.

준비해야 할 선물 걱정은 일부 해소되었다.


숙소로 와서 우리는 한 차례 피곤함을 쏟아내고 난 뒤, 잠시 허기를 달랬다.

다시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저녁식사를 한

지금 생각해 보지만, 뭔가 삽겹살 같기도 하고 한 특식이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모든 식사는 한식이었고, 컵라면도 공짜, 맥주도 공짜여서 (아 맥주는 따로 사서 채웠다) 오랜 여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한인민박이고 다음에 가더라도 한인민박을 꼭 찾고 싶다.


우버를 불러 우리는 다시 카를교 근처까지 갔고, 그곳에서 야경으로 여행의 피로를 씻고, 다시 내일을 기약했다. 다시 못올 프라하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한껏 즐겼다.


오늘은 맥주를 마시지 않고 그냥 자야겠다.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체코의 그 '코젤'은 그곳만의 낭만과 맛이 있기에,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여행객들과 또 맥주 파티를 했다.




다음 날은 딸을 위한 날, 영국의 유명한 장난감 백화점, '햄리스(Hamleys)'가 프라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아침을 서둘러 먹고 햄리스가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근처에 가있기로 했다.


아침부터 눈을 일찍 뜬 딸은, 벌써부터 흥분해있다.


햄리스는 보통 10시에 오픈을 하기 때문에, 햄리스 근처에서 차를 마시던지 초콜렛 매장에서 초콜렛을 사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도 초콜렛가게로 가서 쓱 둘러보고는 제일 신기해 보이는 것 몇개를 사서 나와 우물거리면서 거리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오픈이다. 막 달려가는 딸을 채 잡기도 전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내 검표소 앞에서 기다리는 딸을 흐믓하게 바라보고는 표를 건낸다.


딸아, 이제 너의 시간이다. 즐겁게 보내렴. (사라진다)

아빠인 내가 더 신기해 아이언맨, 아이엠그루트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딸은 또래 아이들과 2층에서 내려오는 미끄럼틀을 수도 없이 타고 나서, 장난감 놀이와 사진찍기를 한다. 아이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 곳이지만, 많은 것들을 그저 주기만 할 수는 없는 그런 비싼 곳이다.


프라하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라기보다 젊은 20대 30대를 위한 곳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나도 더 어렸을 때, 출장이 아닌 여행을 못와본 것이 아쉬움으로 많이 남는다.


젊음의 여행은, 젊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하는 여행은 다른 의미에서의 행복이 있는 것을 매번 느낀다. 젊을 때는 돈이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돈으로 느낄 수 있는 아쉬움속에서의 자유, 그런 추억이 30대, 40대를 살아가는 양분이 됨은 의심치 않는다.


적은 돈으로 많은 곳을 보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맞겠고, 나이가 들어하는 여행은 여유의 상징이 되어야 하므로, 여유있게 둘러보고 생활해보는 것에 그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젊을 때 일을 하느라 시간을 못낸 중년들이 해외 여행을 나오게 되면, 그동안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때문인지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로 쉼없이 돌아다니는 20대의 여행을 따르고 있다. 아쉬움이 크지만, 쉼없이 살아온 우리나라의 단면이므로 이것마저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프라하 공항을 통해 다시 핀란드로 간다.

프라하공항까지는 짐도 많고 이제는 조금 지쳐있는 상태라 우버를 예약해서 가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인 핀란드 여행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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