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우리의 시간들] 9. 일상의 분리

서로 간의 거리

by 유니버스

오늘부터 헬싱키에서의 공식적인 첫 일상이다.


전날 저녁은 11시까지 해가 안떨어져 암막커튼을 해도 세어나오는 빛으로 인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백야인가 싶던데, 이 백야가 아직은 적응이 안된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이 백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직 잠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 그다지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못했다.


난 호텔을 출발하여 학교로 가지만, 딸과 아내는 호텔에 남아 휴식을 취하면서 헬싱키를 둘러본다고 한다. 자칫하면 호텔에서만 머물면서 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 있기에,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가면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도, 아침식사는 같이 하는 걸로 하고, 1층 로비 옆에 있는 자그만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과 로비를 같이 사용하는 조식이라, 공간이 좁지는 않았고,

음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호텔 조식과는 다른 아니, 조금은 축소된 음식들이다.

아침부터 우리 딸은 팬케이크에 와플 등을 집중공략한다. 오렌지를 생으로 갈아서 마시고, 계란 후라이는 Sunny Up(노른자 터트리지 말고, 뒤집지도 말고 그대로, 그대로 살아있게 해주세요.~~)을 외치면서 바쁜 아침은 시작되었고, 여유있게 먹고 올라가라고 하고, 난 동료들과 식당 앞에 모여 삼삼오오 모여 첫 등교를 했다.




날씨, 말도 못하게 상쾌하고 깨끗하다. (정말 이런 날씨는 말로 설명이 안될 만큼이다.)

옷을 입었는데, 옷이 덥지 않고 옷안으로 따뜻하고 가끔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가 옷이 감기지 않게 하고, 햇살은 따뜻한데 인상이 찌푸러지지 않는 정도이며, 눈은 약간 부시지만 시원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정도의 딱 좋은 날씨,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었다. (이 무슨 처음 경험하는 날씨인가)


아빠는 학교 후 크로스하기로, 엄마와 딸은 철저히 헬싱키에서의 삶을 즐긴다. (나도 뭐했는지 들어서만 안다. 그래서 여기 글은 일부 딸과 아내의 찬조를 받기로 했다.)


난 이제 학교에 도착했고, 학교는 아담한 학교였고, 북유럽 정취가 물씬나는 군더더기 없는 학교다.

아주 유명한 건축가의 이름을 딴 경제대학교인데, 핀란드에서는 가장 유명한 대학교라고 한다.


학교에서의 일상은 다 똑같지만, 우리의 강의실로 모여 우리는 시끌시끌 잡답을 늘어놨다.

그동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하고 지냈는지 등, 다 아는 동료들이라 여기서 보니 더 신기하다.

다들 긴장반 설렘반의 얼굴로 상기되어 있고 수업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수업 끝나고 뭐할건지 얘기한다. 골프치러 간다는 사람, 술 마신다는 사람, 주변에 구경하러 간다는 사람들로 시끌시끌.

공부 얘기보다는 나도 딸과 아내의 일상이 더 궁금했다. 어디서 무얼 했는지.




저녁에 우리는 6시쯤에 크로스를 하기로 했으나, 호텔에 가니 아직 안들어와 있다.

전화를 해보니 근처를 아직 돌고 있고, 곧 도착한다고 해서 나도 가방을 두고, 옷을 좀 더 프리하게 갈아입고 다시 나섰다.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난 아직 헬싱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호텔 입구에서 만난 우리 가족, 딸과 아내는 헬싱키 구경하고 나서 피곤하니 들어가 쉬자고 한다.

나는 안된다고, 나도 구경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발 다시 구경이라도 좀 가자고 애원 더하기 짜증 더하기 울컥 더하기해서 내 감정을 충실히 표현했다.


나를 불쌍히 여긴 착한 가족들, 마지못해 길을 나선다.

나는 어디갔다왔냐고 물었고, 딸은 쉼없이 다녀온 곳을 자세하게도 설명했지만,

아직은 공감대가 형성이 안되어 고객만 끄덕였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깜삐역을 중심으로 쭉 내려갔다. 영화관도 있고, 클럽도 있고, 식당들도 많은데,

무엇보다 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가 회차하는 곳이고, 종점인 모양이다.

헬싱키는 핀란드의 수도이고, 이곳이 가장 번화가와 가까운 곳인데, 흠 이렇게 재미없게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


첫날이라 많은 곳을 돌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어제 돌았던 경로와 비슷하게 걸어내려가면서 가볍게 구경을 하고 일상에서의 헬싱키를 즐겼다.

저녁이 되니 역시 빨리 문을 닫는다.

여기가 정말 수도가 맞나 싶을 정도다.

의미는 없어 보인다.


다시 기와에서 돌솥 비빔밥으로 식사를 했다.

이상하게 한국보다 더 맛있다.

한국 주인부부께서 정말 정갈하고 맛있게 담아내긴다.

호텔오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피로감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책들을 편다. 난 그냥 쓰러지듯 잠이든다.

밖은 아직 훤하다.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또 다시 분리된 일상은 시작된다.

어제는 잠을 잘 잔것 같다.

오늘 아침부터는 따로 식사를 한다. 너무 일찍가야 하는 나와 가족들은 시간이 맞지 않는다.

가족들은 좀 더 여유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에, 더 자고 더 먹고 할 수 있다.

그럴려고 온거니 더 누려야지.


나는 그다지 그렇게 즐겁지 않은, 하지만 가벼운 발걸음을 달려 학교에 도착하고,

숙제와 시험을 치르고 또 다시 호텔로 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학교 수업은 모두 핀란드 교수님들이라 다들 영어로 진행되고, 반은 알아듣고 받는 알아 듣는 척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질문이 들어오면, "뭐라고요? 잘 안들려요? I'm sorry, beg your pardon?" 사실 난 영어를 유창하게는 아니지만, 그냥 대충 한다. 막 흘려서 할때도, 또박또박할때도.

식사 주문할 때는 또박또박, 누가 질문하면 흘려서 얘기하는 그런 아주 훌륭한 학생이다.

날씨도 좋고, 놀러는 가고 싶은데 학교에 있을려니, 여기가 아무리 여유로운 해외 대학교라도,

공부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고, 점심시간 기다려지는건 마찬가지.


빨리 저녁에 가족들이랑 만나서 또 놀러나가고 싶은 마음뿐.


이제 본격적으로 헬싱키 내에서 방문했던 인상깊었던 관광지 아닌 관광지를 오픈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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