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텔 창밖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몇일간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비없이 습하고 덥기만 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로 인해 출근길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점심때가 다 되어가니 비는 이미 그쳤고, 해가 쨍쨍하게 나서 젖어있던 도로를 모두 바짝 태워버렸다. 내리쬐는 태양을 등에 업고, 주변 분짜 맛집을 찾았다.
출장온 이곳은 하노이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곳이고, 아이티 기업들이 즐비한 곳이라, 직장인들의 옷차림부터 얼굴이 젊고 밝아보인다. 좁은 계단을 돌아올라가니 작은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베트남에 온 느낌이 난다. 다들 좁아도 창문없는 2층 테라스에서 선풍기로 땀을 식히면서 서로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분짜로 즐기고 있다.
내가 알던 그 분짜와는 뭔가 좀 다른 듯하지만, 모든 재료들을 세팅하고 나니 내가 먹던 그 분짜와 비슷해지고 있다. 하노이는 분짜가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주변에 많은 분짜식당이 있고 프렌차이즈까지 있다.
하노이에 온 건 거의 10년만인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큰 고층빌딩이 많아지고, 도로도 정비가 되었고, 고급식당이나 외제차들도 오토바이의 아성을 깰 정도로 많아졌다. 여전히 오토바이가 작은 도로는 점령하고 있지만, 큰 도로에는 차가 더 훨씬 많아진 것 같다.
올드타운에 호텔을 잡은 건 어쩌면 실수가 아니라,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이렇게 복잡한 거리에 몇일을 묵으면서 지낼 수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출장자의 숙박장소는 뉴타운이고 한국식당이 근처에 있을 법한데, 전혀 그런 느낌없는 살아있는 하노이의 그 모습을 곁에서 바로 느낄 수 있는 이 곳이 참 좋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시끄럽지도 않고, 호텔에 누워있으면 한없이 고요하고 깨끗하다.
하노이에서는 덥고 습해도 걸어서 다니는 맛이 아직 남아있다. 힐끗거리면서 쳐다보는 관광객들, 서로의 국적을 0.5초 내에 스캔하고는 각자의 여행을 즐긴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많고,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가끔 그 거리를 요란하게 지나간다. 커다란 나무 아래로 커다란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은 뭔지 모르게 이 도시의 운치를 한껏 걷어가는 느낌이 든다.
밤에는 또 요란한 젊음의 도시로 변한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한잔 걸치고는 의례히 젊음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외친다. 과연 있을까하는 젊음의 장소들은 어김없이 한곳에 모여있고, 모든 하노이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 더위를 식히기 위해 더 뜨거움을 뿜어내고 있다. 술보다는 그저 어울려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워보인다.
하노이를 가보지 않았는가? 독일을 가면 베를린을 가봐야 하듯이, 베트남을 가면 하노이는 반드시 가야한다. 호치민, 다낭은 베트남이지만 한국이고, 하노이는 여전히 베트남이다. 하노이로 부터 베트남은 시작된다. 다음에 하노이는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계절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