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과 십오

by 유니버스

나는 오십, 딸은 십오.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대칭적인 나이.


거울을 보듯 딸을 본다.

어찌 그리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지, 피는 못속인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바뀌어가는 딸의 모습에서, 가끔 신기함과 함께 아쉬움을 느낀다. 부모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러가는데, 나는 정말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첩을 들춰 옛 추억을 되살렸던 예전과는 달리, 그저 폰에 저장된 사진,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사진을 찾아보며, 이 또한 생각할 겨를 없이 빠르게 넘겨버리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오십과 십오, 35년이나 생긴 간극이 지금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나이가 더 들고 아이가 오십이 되었을 때, '팔'십오가 될 생각을 해보니, 정말 팔십오 근처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진다.


내가 느꼈듯 부모님도 그렇게 느끼셨을까.

80세를 넘기신 부모님은 부쩍 전화가 많아지시고 걱정이 느셨다. 손녀얘기, 며느리얘기, 직장얘기, 건강얘기로 마무리하는 매번 같은 패턴이지만, 형식적이지 않고 진심이시다. 아마도 '오십, 십오' 시절에 십오였던 아들에게 못했던 아쉬움이신지, 좀 더 많은 것을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식을 키우고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짊어진 아들의 고단함을 알고 계심인지 정확히 알길은 없다.


나는 오늘도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차에서 내리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너무나 행복해 한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딸아이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킨다. 나이 차가 많아 같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짐에 대한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풀어보고 싶음일거다.


오늘도 자신의 세대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빠는, 세대 차이가 나는 대화로 딸의 기분을 살피고 있다. 언제나 행복해야 할 '오십과 십오' 한쌍의 아빠와 딸, 거기에 엄마까지, 우리는 숫자가 주는 중압감을 피하기 위해 그저 서로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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