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by 유니버스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가끔 억지로라도 되내인다. 글을 써서라도 기억해내야 그동안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예를 갖추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해 기억을 지키려고 한다.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들도 갑자기 좋아지던 때가 있었지만, 그건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뭔가 좋아해야만 할 것 같은 '아무도 강제로 주입시킨 적이 없는' 강압에 의해 좋아했던 것 같다.


맥주는 스텔라를 좋아한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을 좋아하고, 스타벅스보다 블루보틀을 좋아한다. 뉴욕과 파리를 좋아하고, 맥북을 사랑한다. 테슬라 주식을 사랑하고, 나이키 런닝화를 즐긴다. BMW가 정말 좋고, BMW를 타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넉넉한 통장을 보면서 백화점에서 윈도우 쇼핑하는 걸 신나하고, 뭘 사지 않아도 백화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줄서서 먹는 걸 즐거워한다.


사우나를 좋아하고, 자주는 못하지만 사우나 끝나고 먹는 칼국수를 좋아한다. 펜션보다 호텔을 좋아하고, 석식보다 호텔 조식을 좋아한다. 혼자 영화보는 걸 좋아하고, 영화볼 때 혼자 우는 걸 더 좋아한다. 씨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유브갓메일은 봐도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정말 평생두고 볼 영화고, 그 시대의 맥라이언을 너무 좋아한다. 90년대 감성을 좋아하고, 그때의 음악, 패션, 말투, 친구들이 그립다.


포항덕수성당을 좋아하는 건, 아마도 그 시절 설레였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대학시절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만났던 친구도 좋아한다. 터키 출장 중에 만난 회사 동료와 함께 그랜드바자르 시장에 가서 아내의 가방을 샀던 추억이 너무 좋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내려다보며 작은 까페에서 다음에 다시 만난 날을 기약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다행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마는 다 이유는 있다.


초겨울 저녁에 장작타는 냄새를 좋아하고, 그 장작에 구워낸 호박고구마를 잊지 못한다. 혼자 가는 여행보다 힘들고 돈을 많이 쓰더라도 가족과 가는 여행을 평생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살며, 헬싱키로 공부하러 갔을 때 같이 작은 호텔방에서 복작복작 3주동안 생활하던 때를 그리워한다.


설레였던 나의 첫사랑의 기억보다 아내와 만나 연애하던 시절을 사랑하고, 딸이 처음 태어나던 때를 잊지 못한다. 그 딸이 커서 시험기간에 신경질을 부려도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매일 학교까지 태워주지만, '다녀올게요'하고 한마디 던지고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다시 운전을 해 회사로 향하는 내 모습은 행복해 보이고, 회사에 가서 커피한잔 내리고 신문보면서 즐거워하는 나는 더 행복해 보인다. 날마다 즐거운 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즐거운 날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라도 행복한 모습을 지어보이는 내 자신이 대단하다 느낀다.


기술사 합격한 날을 잊지 못하고, 하고 싶었던 평가위원 첫날의 작은 긴장감도 잊지 못한다. 내가 만든 작은 사업체에 첫 매출을 올리던 날은 너무 기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더 커갈 회사를 생각하며 잠을 청할 때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비록 당장 큰 회사가 되지 않더라도, 작은 회사로 큰 성과를 내는 것이 더 알찬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고, 그 마음을 먹기까지는 좋아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건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만 잘 추려서 기억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과감히 버려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없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매일 티격태격해도 바로 웃음을 지어버리는 가족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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