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왜 이러세요.

by 유니버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당장 침대로 뛰어들고 싶지만, 설겆이가 쌓여있어 옷만 갈아입고 나와 주방에 서서 처량한 뒷모습을 풍겨가면서 달그락거린다.


주말에 김장을 하고 온 이후로 몸이 말이 아니다. 발목도 아프고, 어깨도 잘 안돌아간다. 허벅지는 왜 이렇게 욱신거리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다.


지난 주말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저녁식사는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먹고, 아침식사는 블루베리와 요거트, 사과로 배를 채운다. 점심식사도 닭가슴살과 토마토, 바나나로 허기를 달랜다.


김장 전후로 먹어댄 음식들, 정말 신세계를 맛보게 하는 장모님표 김치는 모든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없어, 수육, 라면, 누릉지 등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조합을 시도해 본다. 그러다보니, 내 몸에 미안해지기 시작했고, 이렇게 하다가는 돼지 뚱보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침 남자그룹 수업을 한다는 집주변 필라테스를 발견하고는 바로 전화해 등록하고, 첫수업을 받고 말았다. 벌써 1년 넘게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지만, 쫄바지를 입고 신여성들과 수업을 받기에는 내가 아직 그렇게 철판은 아니었기에 남자수업이나 커플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남자들만의 수업이 시작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4:1인데, 역시나 남자들은 당일에 많이 빠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2:1이 되어 버렸고, 처음이었지만 너무나 신나게 다리를 찢고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발목을 꺽어가면서 땀을 흘렸다.


난 이제 필라테스 전의 나로 돌아가기는 글렀다. 뭐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난 필라테스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너무 젊지 않은 선생님 덕분인지 눈치도 많이 보지 않게 되었고, 10분 정도 지나면서 특유의 유머를 살살 흘려가면서 수업을 하다보니 쌓인 스트레스도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주를 기약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건물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이 후들거림인가. 간만에 내 몸에 선물을 줬다고 생각하니, 이 기분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졌다.


본격적인 닭가슴살과의 동행을 부르짖으며, 그렇게 먹으라고 할 때는 입에도 대지 않던 닭가슴살을 대거 영입해 냉동실에 꽉 채워놓았다. 칠리, 카레, 현미, 고추마요.....무슨 닭가슴살이 이렇게나 맛있나요? 또 한번 사랑에 빠지는 한없이 가벼운 중년의 한 남성은 가벼운 몸을 상상하면서 히죽거리기 시작한다.


나의 몸에 든든한 국밥을 넣어주지는 못하지만, 건강한 식단과 가끔 찢어지는 고통을 동반한 필라테스를 선물한다는 것이 요즘은 가장 행복한 활력소가 된 것 같다. 날씬해진 허리, 날렵한 턱선, 빛나는 얼굴빛을 소유하게 될 몇개월 후의 나 자신을 상상하며 오늘도 열심히 닭가슴살을 찢어 입에 넣는다. 맛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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