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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 Sep 11. 2018

자서전은 개인의 신화

이야기와 타로를 활용한 자서전 쓰기 2



자서전(autobiography)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어원을 가진 세 단어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다.  'auto-bios-graphein' 은  '나 - 삶 - 쓰다'라는 의미로,  '내가 나의 삶에 대해 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 간다. …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삶의 무게가 이야기의 무게로 바뀌는 순간, 삶은 드디어 깊이를 획득한다. - 유호식 <자서전 서양 고전에서 배우는 자기표현의 기술> (2015, 민음사)




모든 글은 자서전입니다. 어떤 글이든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연구 논문까지도 다 필자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연구 논문까지라고?" 하며 의아해하는 당신이 보이는군요.


연구서의 경우,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방대한 양의 지식을 탐독하면서 장기간 열정적으로 본인이 목적지로 정한 주제에 닿기까지 달려가는 열정적 에너지는 연구자 본인의 이야기와 밀접히 맞닿아 있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험난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뛰어난 이야기꾼인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많은 민담을 수집하고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연구서인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중간중간 들려줍니다. 개인적 체험이 들어간 이야기는 흥미로워집니다.  


한 번은 내가 꿈속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격려하듯 내 발을 톡톡 쳤다. 그래서 내려다보니 내가 어떤 노파의 어깨 위에 서 있고, 그녀는 내 발목을 잡아주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럴 수가! 안 돼요. 제가 할머니보다 젊으니까 할머니가 제 어깨 위에 서야지요.”

라고 했다. 

“아냐, 아냐. 이러는 게 정식이야.” 

그녀는 말렸다. 

그래서 다시 보니 그녀 역시 그보다 훨씬 더 늙은 할머니를 딛고 서있었고, 그 할머니는 장삼을 두른 할머니 위에, 또 그 할머니는 그보다 더 늙은 다른 할머니 위에…. 이런 식으로 계속되는 것이었다. 그러는 게 정식이라는 그 할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고려원, 1993, p30~31    (2015년 이루 출판사에서 재출판) -



교육과 본성에 대한 인간의 성찰 능력을 향상한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은 900쪽에 가까운 방대한 양의 글을 자전적 형식으로 썼습니다. 너무 두꺼워 읽기에도 버거운, 딱딱한 베개로 사용하면 딱 좋을 듯한 두께의 그 책은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청년으로 성장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썼습니다. 스타일과 내용면에서 얼마나 개성적이며 파격적이었던지 루소의 <에밀>은 당시 정부로부터 압수당하기도 하고 루소는 유배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글을 쓰고 있는지 본인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에밀>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무질서한 데다 거의 일관성이 없는 성찰 관찰들을 모은 글은 깊이 사고할 아는 어느 착한 어머니의 요청과 권유에서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는 처음에는 그저 분량의 기록 형식으로 계획했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길어져 지나치게 두텁기만 했지 다루는 내용에서는 아주 하잘것없는 작품이 되어버렸다(중략) 쓰기 위해 노력해보았지만 뾰족한 결과를 얻지 못한 나는 상태로 출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주제에 대해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이 중요하며, 생각이 비록 졸렬할지라도 그것들이 좋은 생각을 싹트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면 내가 시간을 완전히 허비한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 자크 루소 <에밀> 김중현 옮김, 한길사, 2003, p21



문학작품의 경우는 과학적 합리적 근거에 신경 쓰기보다는 이야기가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거짓말이 되는 데에 힘을 쏟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말 진짜 같은 거짓말이 될까?' 그러고는 이야기 뒤에 숨어서 가짜가 진짜가 되게 '창조'라는 것을 하지요. 역설적이게도 정말 진짜 같은 거짓말의 이 '허구성'이 '현실성'을 획득하게 한다는 겁니다. 문학의 매력입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씁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이 밝음과 어둠의 두 세계를 하나로 통합해 가면서 겪는 정신의 방황과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입니다. 눈 밝은 독자가 문체를 통해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헤세 자신은 아마 데미안을 쓰는 동안 자서전을 쓰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훨씬 앞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이전으로 내 유년의 맨 처음까지, 또 아득한 나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리라.. 나 자신을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는 감히 부를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는 않는다.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2010, p7~9 -



제가 만난 사람들 거의 글쓰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에는 썩 관심이 있었습니다. '글은 쓰고 싶은데 글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데, 저는 무척 공감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글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데도 사연이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오래되어 그 사연을 잊은 건지도 모르고요, 기억하기 싫어서 잊힌 건지도 모르지요. 그런데도 떠올려서 쓰려고 합니다. 글 쓰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또 분명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글은 왜 쓸까요? 장 자크 루소는 <에밀>을 쓰게 된 계기가 '그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라고 고백했습니다. 환심, 사랑, 애정 등 어떠한 종류든 관심받기 위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소설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처음부터 문학에 대한 나의 포부는 내가 외톨이이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과 뒤섞인 것이었다.'라고 말하며 글쓰기의 동기를 네 가지로 분석합니다.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 보복하고 싶은 욕망' '순전한 이기심'을 첫 번째로 꼽고, 그 뒤에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듭니다. 그리고 에세이 끝부분에서 그는 글쓰기의 '동기의 밑바닥에는 어떤 미스터리 하나가 놓여 있다'라며 덧붙입니다.



동기는 다양합니다. 당시 서른여덟 살의 엄마였던 한 여인은, 아이를 위한 자장가로 이야기를 지었고, 나중에 아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생일선물로 주기 위해 그 이야기를 글로 적습니다. 그 이야기가 <말괄량이 삐비 롱스타킹>이며 그녀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미오 나의 미오> 등을 쓴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입니다.



"삶은 너무나 부서지기 쉽고 행복은 붙잡아 놓을 수 없다."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마렌 고트샬크 지음, 이명아 옮김, 푸른 책들, 2012




자서전은 기억을 일깨우는 일이다. “그때부터 무슨 일을 하기 시작했다” 거나 “그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이사했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삶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눈은 무슨 색이었나? 양쪽 귀를 한꺼번에 닦기 위해 증조부께서 손수 기운 수건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그런 자잘한 것들은 당신만이 쓸 수 있는 역사의 편린에 풍취를 더한다.' -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p190)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Snoopy’s Guide to the Writing Life>  몬티 슐츠, 바나비 콘라드 엮음, 김연수 옮김, 한문화, 2012




결국 자서전은 옛날이야기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 시간 그 장소를 되살리는 작업이 자서전 쓰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어라."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날 일이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수백 권은 될 거로." 



자, 이제는 당신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하신다면 그건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다양한 거울들, 이를테면 반사경이나 유리, 사진이나 시시티브이, 혹은 명상이나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나를 보게 되어도 진짜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나의 겉모습이거나 일부분일 테니까요. 


나를 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에는 운명을 알고자 온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지만 정말 중요한 말은 신전에 새겨놓았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또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인도인들도 원하지 않겠지만. 그만큼 영국인들이 사랑했다)는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이라는 작품에서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사람이 누구냐"라고 외치고요. 1982년 노벨문학상을 탄 가브리엘 가르시아스 마르케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라시네스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글쓰기가 자기를 알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말합니다.



그가 내 영혼에 남을 만큼 뜨겁게 말했다.  “가브리엘, 당신이 누구라는 사실을 왜 내게 한 번도 얘기해 주지 않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아이, 라시네스 아저씨.” 나는 그보다 더 가슴 아파하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오늘날까지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아저씨에게 말할 수 없었던 거예요.”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14, 707쪽



[글쓰기 미션] 자서전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원하나요?





이야기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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