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주 Jan 03. 2019

좋은 글보다는 똥 같은 이야기

똥 같은 이야기의 힘 / 똥꿈 3


우리 안에 매일 쌓이는 똥, 굳이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하지 않더라도 대체로 자신의 똥을 쉽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자신의 더러움을 끄집어낸다면, 오히려 상대의 마음까지도 편하게 열게 되어 서로가 연결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여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모임의 한 분이 자신에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용기 내어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이 꽁꽁 눌러 두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Y의 아버지는 3년 전 돌아가셨고 보름 있다가 암에 걸려 있던 어머니가 연이어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줄초상이었죠. 건강하다고 여겼던 아버지는 암 환자인 어머니를 2년 동안 돌봐주셨습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먼저 돌아가신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처음엔 너무 놀라고 황당하고 허망하게 몇 달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아버지 앞으로 있던 아주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두 자매의 몫으로 남겨졌다는 것입니다. 그게 상당히 많은 재산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평소에 돈에 아주 인색했습니다. 딸들에게는 늘 ‘돈 없다’, ‘빚이 많다’며 노래를 했답니다. 두 딸 중, 누구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도와달라고 할까 봐 만남도 멀리했답니다. Y는 갑자기 받게 된 유산으로 빚도 갚고 단칸방에서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차까지 샀습니다. Y는 인색한 아버지로 인해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물질적 결핍에서, 비로소 충분히 해갈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이 너무나 꿈만 같고 행복한데, 그 누구에게도 기쁨을 드러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마치 부모가 돌아가시기라도 바란 패륜아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는 것이죠.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면, 두 분에 대한 슬픔보다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기쁨과 풍요로움이 훨씬 더 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다른 분이 크게 맞장구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은 정말이지 징글징글하게 많이 싸웠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장 초기 기억조차 부모님의 싸움이었으니까요. 중학생이 되고 나니 부모님이 안 계셔도 동생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기더랍니다. 그때부터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오랫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보육원에 갈 필요 없이, 이 집에서 부모님 재산으로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라고요.     


이 얘기에 또 다른 분이 자신도 그랬다며 공감했습니다. 자신의 부모도 너무 싸워서 지진이 난 듯 불안으로 잠을 못 잤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면 자신은 누구를 따라가야 하나 밤새 고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부모님이 안방에서 사이좋게 웃으며 나와 아침밥을 드실 때는, 안도감보다는 배신감에 부르르 떨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편안했고 또 즐거웠습니다. 자신에겐 구린 부분이라 여기고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안전함을 느꼈으니까요. 게다가 자신만 이상하고 구린 똥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시원하게 똥을 쌌는데 보니 (수세식) 변기 안에 네 덩어리의 굵은 똥이었습니다. 그날 굵직한 똥 같은 이야기를 드러낸 사람은 네 명이었습니다. 끄집어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만으로도 배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그들의 똥을 보았지만, 사실은 나 자신 안에도 같은 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편안하고 안전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똥을 함께 배설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연금술의 신비는 가장 가치 없는 물질에서 최고의 황금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칼 융은 똥이 황금으로 변할 수 있는 연금술의 기본물질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직면할 때 황금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똥 꿈을 꾸면 횡재’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구린 요소를 만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의 똥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황금으로 바꿀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농부들은 똥오줌이 가장 좋은 퇴비임을 압니다. 똥오줌을 통해 최고의 황금 벼를 수확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글을 쓰는 한 지인이 “좋은 글보다는 똥 같은 글!”이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표현이 제게는 죽어있는 아름다운 글보다는 똥 같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울림을 주었습니다. 똥 같은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저처럼 속 시원한 배설이 되듯,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똥 같은 이야기는 혼자 배설하지 못해 마음의 변비를 겪는 사람들에게 황금 같은 배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글의 힘일 것입니다. 지인의 표현에 힘입어 더욱 똥 같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착한 사람이 우울해지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