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변비 / 똥꿈 2
똥 꿈은 우울함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안 보고 싶은 더러운 것들이 많다면, 우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전혀 벗어날 길이 없다고 여길 때, 우울함에서 헤어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닥치는 최악의 상황들은 우리를 우울함에 빠지게 만듭니다. 꿈에 나오는 똥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압도하는가에 따라 우울함에 빠지느냐 아니냐를 볼 수 있습니다.
20대 후반의 여성, L의 꿈입니다.
‘어딘가 가고 있는데 똥 비가 내리고 있다’
‘길거리에 똥이 너무나 많아 어디 발 디딜 만한 곳이 없어 갈 수가 없다’
L은 똥 꿈을 자주 꾼다고 합니다. 똥 꿈마다 똥의 양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심지어는 똥비 꿈까지 꾸었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L은 ‘똥 꿈을 꾸면 횡재’라고 들었기에 로또를 샀다는 거죠. 그러나 당첨된 적은 없기에 이제 더는 로또를 사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L에게 요즘 살아가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L의 첫마디는 “우울해요” 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듯 보였습니다. L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우울해지니까, 생각하지 않고 살아요.”라고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경리 일을 하는 L은 현재 7년 동안 사귀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우울증에 빠진 어머니를 경제적, 육체적으로 돌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적은 월급으로 대학생인 남동생 학비까지 자신이 주고 있다는 겁니다. L에게 현실에서의 우울함을 ‘똥비’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최악의 더러운 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울합니다. 이것은 병적인 우울증이 아니라 우울한 기분을 말합니다. 똥, 즉 더러운 것이 너무 많으면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이 언제나 우울하지만, 병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L은 어릴 때부터 어른스럽고 착하게 행동을 해서 부모나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린 자신에게 “내가 너 때문에 산다. 네가 없었으면 엄만 벌써 죽었을 거야.” “엄마는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우리 착한 딸!”이라 부르곤 했답니다. 어린 L에게 이런 말들은, 인정받고 특별대접 받는 것 같아 좋았다고 합니다. L은 더욱 열심히 어머니를 도와드렸고 집안일, 동생 돌봄까지 해왔습니다. 고달플 때도 많았지만 언제나 밝게 웃으며 착한 딸이 되었지요.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착한 딸로 사느라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L은 착한 존재로 살아내기 위해 자신 안에 쌓이는 똥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자신이 원하는 삶은 꿈도 꿔보지 못하고, 해결해야 할 집안의 문제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말대로 자신이 아니면 집안을 끌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큰 짐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해, 더는 이 집의 가장 역할, 못 하겠어!”
“난 착한 딸 아니야. 이젠 나도 결혼해서 내 삶을 살 거야!”
“(남동생에게) 네 학비 네가 벌던가, 학교를 그만두던가, 더는 네 학비 내줄 수 없어!”라며 가족에게 자기의 생각, 감정,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L의 특이했던 점은, 그 많은 똥비로 우울한데도 언제나 만날 때마다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 주위의 누구도 자신의 우울한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다고 합니다. L은 사람을 만나면 자동 밝고 쾌활한 얼굴이 되지만, 조금만 자신을 돌아보면 이내 우울함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친정어머니가 남들과 싸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 믿을만한 사람,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조차도 힘들어했으니까요. 어머니가 예전 살던 집은 점포와 월세방을 내주어 임대료를 받아 사셨습니다. 어머니 점포에 세든 가게 아저씨는 장사가 안된다며 월세를 습관적으로 미루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참고 참다가 겨우 얘기를 하면 밀린 세를 좀 받을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쇠였습니다. 어머니는 가게 아저씨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속에서는 똥이 쌓이는데도 아저씨에게 “세를 계속 밀리면 가게를 비워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저씨의 가게는 어머니의 집이 팔릴 때까지 이어 갔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10년 넘게 아저씨의 월세를 받아내기 위해 괴로워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키우며 욕 한번 한적 없음을 자랑처럼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욕 한번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내 안에 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뱉어본 적이 없으니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면, 자신 안에 생기는 똥이 자신의 좋은 이미지에 맞지 않기에 똥 (더러움) 없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할 것입니다.
문제는 내 안에서 매일 쌓이게 되는 똥을 배설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배설되지 못하는 똥은 쌓이고 또 쌓입니다. 안에서는 똥이 점점 많아지는데 밖으로는 배설할 길이 막혀버리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우울한 기분에 젖어 살아가게 됩니다. 마치 똥 씹은 표정으로 말이죠.
당신은 어떠세요? 요즘 우울하신가요? 그렇다면 먼저, 마음 안에 똥이 너무 많이 쌓이진 않았는지 살펴보세요. 오늘 밤 당신의 꿈에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