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글을 써야 할까에 대한 고찰
"언니 글은 마치 목탄으로 그린 그림 같아요. 거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는 힘이 느껴져요."
"너의 글을 읽어보니, 너에 대해 너무 몰라줬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내가 멀리서 응원할게."
"네가 왜 맨날 힘들다고 하는지, 사실은 네 외모로 살면 나는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데, 네 글을 읽어보니 얼마나 삶이 험난했을지 그려져 눈물이 너무 난다.
내 글을 읽고 친구들이 해 준 말이다. 나는 나의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하여 브런치에 나의 친구들을 딱 3명만 초대했다. 제작년부터 마음속에 떠다니던 글감들을 종이에 붙잡고 그려나가기 시작했으니, 지금 나에게 구독자가 50명이 된 것도, 글마다 조회수가 3만 명이 넘는 것도 기이하고 너무 감사한 일이다. 글 쓰기에 앞서 과거부터 나를 지켜봐 주고 구독을 눌러주신 나의 독자님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너무 힘든 수풀에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지만, 독자분이 한 분 한 분 늘 때마다 얼마나 삶의 원동력이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믿어준 독자님들을 위해 언젠가는 내가 "힘들지만 이겨내자"라는 작가가 아니라 "힘듦에도 잘 버티고 이제는 좋은 일들만 가득한" 작가가 되고 싶다. 그렇게 믿음에 보답해드리고 싶다.
오늘은 운전하면서 나에 대해서 많이 성찰해 보았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나를 너무 잘 알지만, 참 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하나같이
"외동인데 늦둥이에 이렇게 예쁘니 얼마나 부모님이 귀하게 키우셨을까."
"언니는 너무 완벽해서 누가 데려갈지 참 기대된다."
"너의 남편은 참 복 받았다. 누굴지 몰라도 네가 결혼할 사람이 제일 궁금하다."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 내가 이혼으로 골골대고 숨죽여 아파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어릴 때 엄마가 편찮으시면서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을 때면, 나는 마음속에 느껴지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항상 껌처럼 되뇌고 또 씹어대며 외로움이 친구라 생각하고 지냈다. 외로움이 지속되지만 답이 없었을 때는 그 어린 나이에 외로움이 나의 숙명이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때 내가 외로움을 이겨냈던 것 중 하나가 "명랑소녀 성공기"라는 장나라와 장혁이 나오는 드라마였다. 그때 장나라는 억센 운명 속에서 늘 명랑하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모든 것을 헤쳐나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삶이 힘들어도 늘 웃으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늘 웃고 다녔다. 웃음이 나의 얼굴이 되어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 제가 아파서 조퇴를 해야 해요."라고 했는데 "아픈 사람이 그렇게 웃는 상으로 말을 하냐. 안 돼."라고 진짜 아파서 집에 가고 싶은 정도였는데 퇴짜 맞기 일쑤였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나를 선생님이 딱 맞다며 2년을 지켜보시더니 교대에 추천해서 보내주신 선생님이셨다.) 나를 정말 예뻐하시면서 "민지는 정말 순수하다. 하얀 눈 같다. 그런데 얘들아 매일 웃고 다니는 사람은 마음속에 큰 아픔이 있더라." 라는 말에 내 마음을 드디어 건드려주는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얼마나 속으로 울음을 참았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나를 잘 아는 나는 무척 강하다. 다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하지만 아주 외유내강 형이다. 나랑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언니도 지치지 않고 계속 빠른 걸음으로 하루종일 씩씩하게 걷는 나를 보며 "너는 알면 알수록 진짜 외유내강인 것 같아. 정말 강한 것 같아."라고 혀를 내둘렀다. 내 안에서 들어오는 창을 쉼 없이 맞아댔으니 내가 얼마나 방패로 막아대며 싸워댔겠는가. 내 안에 수많은 시간들이 수풀을 헤치고 나서는 잔다르크 정신이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34년째 항상 밝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밖에선 사람들을 잘 웃겨주어서 나를 '비타민'이라고 많이 부르고 찾는다. 웃음의 가면이 많이 단단하고 두꺼워져서 정말 나는 웃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이렇게 억척같이 웃으며 사는 내가 피에로처럼 서글퍼져 쌓아 왔던 눈물의 둑을 터뜨리고는 한다.
또한 나는 마음이 내가 봐도 정말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 같다. 우리 반 아이들을 보아도 마음의 소리가 다 들리고 그 아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해주고 싶다. 옛날에는 길거리에 폐지 줍는 할머니를 봐도 눈물을 흘리고, 길거리에 치인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면 하루종일 집으로 돌아와도 마음에 쓰이고 돼지들이 틈도 없이 옹기종이 모여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행하는 것을 보면 '돼지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바깥세상이겠구나.' 싶어 운전 중에 펑펑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은 적도 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정이 많아서 10년째 아이들과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쏟아내고, 누군가와의 이별 자체를 많이 힘들어한다.
나는 예술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고, 목표를 끊임없이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고, 내 안에 갇힌 에너지를 폭풍 발산해 낼 때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연재되어야 하는 글을 때로는 미루기도 했으나, 지금은 내 안의 고통들이 불쏘시개가 되어 매일매일의 글감을 만들어낸다. 무언가를 써내려 갈 때 내 안의 에너지가 발산되는 그 기쁨을 참을 수 없다. 무엇보다 독자님들이 내 글에 하트를 눌러줄 때면 내 안의 성취감의 도파민이 쏟아져 나온다.
주위 사람들이 말한 만큼 나도 내가 시집을 엄청 잘 갈 줄 알았다. 이렇게 꽃이 꺾일 줄 몰랐다. 이혼이라는 것은 정말 나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지만 이제는 이혼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스페이스 바를 눌러 빨리 미래로 뛰어넘어 버리고 싶지만, 오늘 하루하루가 모여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발전적이지 않은 어둠에 갇힌 이야기는 이제 남들에게도 그만하고싶다.
" 나는 네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나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알아줬음 하는 사람인 전남편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은 브런치에 내가 쓴 글을 보내주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힘든 나날들을 보냈지만 강인하게 이겨내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공감받고 싶었다. 하지만 전 남편은 내 글을 읽은 사람 중 유일하게 부정적 피드백을 날렸다.
"내가 아는 너랑 글 속에 너는 왜 그렇게 다르니. 글을 쓸 때는 완전 배려심 넘치는 사람 같던데 왜 이렇게 배려를 일상에서는 안 하니? 그리고 나도 너보다 더 잘 쓸 수 있다. 내가 썼으면 구독자 엄청 많았을걸."
역시 여자를 한 번도, 아니 나를 한 번도 존중하지 않던 남편의 말이었다.
내 글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한다. 내 글이 늘 어둡거나 "힘들지만->밝게 이겨내자" 로만 끝날까 봐 글의 방향에 대해서 성찰과 고뇌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많은 독자들을 끌어낼 수 있는 소재로 가식적인 내가 되기보다는 내 삶의 이야기를 늘 진심 어리게 하고 싶다. 소박하고 진솔하게 내 삶을 이야기하되, 내 삶이 누군가에게는 네 잎 클로버 한쪽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자기 계발"이나 "에세이" 베스트 샐러를 읽어 보아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죽을 것 같던 나의 고통에 진심으로 힘이 되었던 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글이 오늘의 밤을 두려워하는 작고 소중한 존재에게 나처럼 삶이 정글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나아가도록 손을 잡아주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 글이 다는 아니더라도 한 편이라도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이 자리를 빌려 지금까지 구독해 주시고 믿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그 감사함을 담아 나는 이제 정말 잘 지내보려 한다. 비록 여러 번 무너지는 날이 있어도 내 삶에도 발전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날까지 활활 타는 창작열을 불태워보겠다. "힘이 들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서영은의 노래가 귓가에 맴맴 도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