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야 할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계절사이에 극명한 틈이 없다. 모든게 소리없이 피어났다가 인사없이 저물어간다. 이 무뎌진 계절 사이 어디에쯤 벚꽃이 흐드러질 때 , 아 봄이다! 매미가 악을 쓰고 울어댈때쯤, 아 올해도 여름이왔구나 작년에도 이만큼 더웠나?. 노랗게 흩날리는 은행 잎을 보며 가을이다! 그렇게 물든 단풍을 올해 몇 번 본 기억도 없이 묵혀둔 패딩을 꺼내입으며 매섭게 시린 겨울이 왔다. 이렇게 매 계절을 몇 번씩 느끼고 나면 1년이 금세 또 지나가있다. 우리 삶도 계절과 함께 하루에 뜨고 지는 해와 함께 무뎌져 무의식에 잠겨 바퀴를 밟으며 살아간다.
무엇을 위해 이리 살아가는건가 싶다가도 조금만 한 눈 팔고 바퀴를 밟지않으면 나보다 더 먼저 나아가있는 동료들 속에 다시 정신차려야지. 감성에 냉수 마찰 한 번 하고 다시 냉철하게 살아가야한다. 감성과 타성은 거추장스러운게 되어버린다.
문든 그 계절 속 어디쯤 무방비 상태에서 안 그래도 힘든데 화살촉으로 나를 할퀴고 찔러대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열심히만 살았을 뿐인데 그 약해진 면역력이 티가 나는지 지독히도 파고들어 말과 행동으로 상처주고 승리의 빨간 깃발을 휘날리며 뒤돌아서는적군이 있다.
이제는 면역이 되었다 싶어 성벽을 단단히 쌓는다. '정말 나는 독해졌어. 더 이상 누가 쳐들어와도 난 무너지지 않을 자신있어' 주문을 외운다. 하지만 또 다른 적군이 냄새를 맡고 이번엔 탱크를 이끌고 성벽을 향해 무참히 쏘아댄다. 단단히 다지며 다시 일어서려던 그 나날들이 맥없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
소원을 빌며 쌓아올린 정성스런 돌담도, 시멘트로 구멍을 용납하지 못 하도록 메워버린 그 단단한 성벽도 또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진다.
살아보니 인생에 영원한 나의 편은 엄마 아빠인것 같다. 내가 쇼파에 누워있는듯 아무 불안과 걱정 없이 안락하게 다 풀어진 상태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사랑해주고, 그 빈틈을 오히려 더 메워주고 채워주고 감싸주는. 허나 부모님과 내 인생을 일평생 함께 나란히 할 수 없음은 눈물짓게 한다.
엄마 아빠 다음으로 내 편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사랑하던 이가 이번엔 사상최대의 적군이 되어 나를 무참히 짓밟고 짓누르고 간다. 한없이 그에게 베풀었던 그 따뜻함과 친절함 그 모든게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긴장하지않고 발가벗겨진 아기처럼 순수히 보여주던 내맘이 또 약점이 되었나보다.
모든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던 그 사람에게 당해버렸다. 내가 보여주었던 약한 마음이 떠날땐 나의 약점이 되어 함부러 나를 할퀴고 갔다. 열등감으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그 이는 지금까지 서럽게 윗 사람들에게 받았던 부당함을 나에게 풀고서 자신의 서열을 재정리하고 떠나버렸다.
아.... 새로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이제 과연 나의 진심을 어느 정도 보여주어야 할까 겁이 난다. 세상에 영원한 내 편일것 같던 사람이 한 순간에 남이 되어 돌아선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아프다.
사랑뿐 아니라 사람 관계에 있어 늘 다치지않기 위해서 가시가 있는 탈을 쓰고 살아간다. 너무 따갑고 차가워도 뒤에서 욕을 하고, 또 너무 착해도 이용당한다. 사람은 동물의 본능대로 어쩔수없이 끊임없이 보이지않는 서열을 메기고 제압해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 하나보다. 내가 가진 이 본디의 마음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보여주고, 자아의 타고난 품성과 살아남기 위해 갖추어야 할 방패 속에서 어느정도로 중용을 지키며 살아가야할지 모르겠다.
마음을 다잡고 이젠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약해 보이지 않으리' 울며 고사리 손으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다. 이번엔 소망을뺀 다짐만있다. 다듬어지지않은 돌을 깨고 문질러 둥글게 다듬는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오늘도 고민한다. 감성을 다 빼고 이성의 공기만 내 머릿속에 주입하기에는 이미 타고난 감성적인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행위 같다. 그래 나는 나야.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를 잃지말아야지. 새로 오는 네 계절을 기다리며 다짐한다. 이번 네 계절은 꼭 봄과 여름 사이, 여름과가을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 , 그리고 겨울과 봄 사이 소리 없이 달라지는 그 틈의 공기도 다 느끼고 익혀야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일 변화 무쌍하게 움직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지.
정말 좋은 관계와, 좋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가치를 알고 사랑해 줄 것이다. 가시박힌 탈을 잠시 내려놓고 살아도 되는. 탈을 내려놓은 그 틈을 급습하지않는 그런 사람들일거고, 반드시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거야.
"나의 본디가진 품성을 무참히 이용하고 밟아버리는 몇 안 되는 사람에게 전전긍긍하며 인생을 앓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운걸."
다짐하며 일어서기를 또 반복한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인생이란 참 하늘이 내려준 어려운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꺼지지 않은 불씨를 살리며 다시 힘차게 살아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