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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y Sep 25. 2024

외롭지만 괜찮은 척

행복한 척 괜찮은 척 씩씩한 척

 회의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교감 선생님이 같이 가자며 나를 우리 교실에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다.나는 원래 교감 교장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편이라 늘 깍듯이 대했는데, 갑자기 데려다주신다고 하니 무슨 하실 말씀이 있나 싶었다. 교실 중반쯤 다 와갔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내 손을 지긋이 잡아주셨다. 손이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는 내 눈을 인자하게 바라봐 주셨다. “요즘은 좀 괜찮아요?” 무엇인가를 알고 계신다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다정한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다. 가슴이 메말라가고 극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그 말에그렁그렁 눈물이 또 맺혔다. 교실로 들어오니 교감선생님께서

“그 사람과는 헤어졌어요?”라고 하셨다. 역시 동료 친구가 많은 학교에 다니니 건너 건너 말씀은 내게 않으셨으나 다 알고 계신 듯했다. 그간 이혼을 하기까지와, 이혼을 하고 나서 더욱 힘들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가슴에 쌓아 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혼을 하고 나서 나는 더욱 눈물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조금만 찔러도 늘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옛날에 일 했던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이 나는 늘 만화 속 주인공 “캔디”같다고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늘 웃고 다니는. 그래서 내가 상대방에게 늘 밝게 느껴져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학교에서도 분명 이혼 전까지는캔디처럼, 아니 이혼을 하고도 항상 씩씩하게 웃으며 일했던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의 따듯함이 내 가슴을 후벼 팔 때면, 그립고 고대하던 따뜻함에 눈물이 마중 나간다. 남편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을 다른 사람을 통해 느낄 때마다 더더욱 눈물이 흘러나온다.

 

 이혼을 하면서 내 가슴에 원망과 한이 너무 맺힌 것 같다. 결혼식도 한 것도 아니고 같이 살림을 산 것도 아니고 혼인 신고를 먼저 해버린 것도 죄책감이 들고, 사람이 어떻게 미안함 없이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려고 하는 전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이 어찌 할 수 없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늘 씩씩하게 헤쳐나가던 내가 이번엔 제대로 면역력이 붕괴되었나 보다.

 

이렇게 마음이 힘들수록 사람의 따뜻한 손길과 아무 말없이 그저 안아주는 포옹이 너무 그립다. 그렇게 교감선생님께 한바탕 그 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시 씩씩하게 학교 생활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교감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참 많다. 내 주위에도 힘든 나를 알고는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괜찮을 때 보자고 기다려 준다는 친구들도, 자기 일처럼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걱정해 주는 사람도 참 많다. 그래도 고통은 나의 것이니 내가 감당하고 이겨내야지 이야기해 보았자 이혼한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마찬가지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쥐어주고 싶지 않은 성격이라 더욱 친구들과의 만남이 조심스러워진다.

 


 

반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빈센트 반고흐의 인생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싶어 고흐의 작품을 하나씩 살펴본다. 반고흐는 언제나 외로움과 고독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고흐는 그가 살아생전에 인정받지 못했고, 그가 그토록 믿고 신뢰했던 고갱마저도 절연을 하면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며칠 후 권총을 쏘고 세상을 떠났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지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보면 검푸른 하늘과 밀밭을 짓누르는 엄숙한 분위기, 불길함을 상징하는 까마귀인 검은 새 떼를 통해 그의 분노와 슬픔이 느껴진다.

 

 장폴 사르트르는 그의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적인 외로움”을 ‘구토’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쉽게 설명했다.

<나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인다. 독학자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다.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악몽 속에서처럼 싱겁게 웃는다. 나는 도저히 삼키기 싫은 빵조각을 억지로 씹고 있다. 인간들, 인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나는 토하고 싶다. -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솟구쳤다. ‘구토’다.>     


 외롭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새로운 사랑을 하고 싶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류와 교류가 하고 싶은 존재적인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른이기에, 선생님이기에 아이들에게 늘 웃는 얼굴로 오늘도 씩씩하게 선다. 내 감정이 더 연약해질수록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 강한 어른이 된다. 내 감정이 일에 스며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럴수록 더욱 고독의 깊이는 더해진다.     


 나는 반고흐처럼 귀를 자를 용기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늘 사람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존재인 것 같다. 요즘따라 사람이 주는 ‘인간적인 정’을 느낄 때마다 자꾸만 코끝이 찡해진다. 사르트르처럼 외로움을 '구토'로 토해내 없애고 싶다. 그렇지만 오늘도 웃는다. 외로움이 내 온몸에 돌고 돌지만 오늘도 어쩔 수 없는 괴로움을 가슴에 묻고 나는 씩씩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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