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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by 한상영변호사

변호사로서 누군가의 편을 들며 살아왔다. 어떻게 보면 편들기의 전문가가 되었다. 내 고객이 원고인지 피고인지에 따라 내 편의 승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객들은 대부분 나에게 만족했다.


하지만 과거를 회상해 보면 나는 가정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당시에 우리나라의 많은 부부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고부간의 갈등이 우리에게도 여지없이 생겼다.


명절 때 부모님을 뵈러 가면 어머님은 무조건 당신의 아들인 나만 챙겼다. 멀리 서울에서 몇 시간 동안 꽉 막힌 고속도로로 차를 타고 오느라 고생한 며느리는 항상 뒷전에 있었다.


아들은 부모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음껏 휴식을 취하며 즐기고 있는데, 아내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음식 준비하랴, 애들 챙기랴, 어머님의 잔소리에 눈치 보랴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시댁이 불편하여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명절이 끝나고 귀경하는 차속에서 아내가 어머님과 시댁 식구로부터 당한 일을 꺼냈다. 아내는 남편인 나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위로는커녕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자 아내가 “당신은 누구 편이야?”라고 되물었다.


현재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아내는 “힘들었지?”라는 단순한 위로를 듣고 싶어 했었다.


아내가 말로 어머님에 대해 섭섭함을 표현하는 것은 아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님으로부터 상처 받은 아내의 아픈 가슴을 남편인 내가 보듬어 주지 않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이를 대신할 자가 없다는 점을 몰랐었다. 요즈음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고부간의 갈등에서 어머님은 이미 모든 것을 며느리에게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는 강자의 지위에 있었다.


아내는 사실 남편과 결혼한 것이지 어머님을 보고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생길 때 아내가 의지할 사람은 남편밖에 없는데, 정작 남편인 나는 엉뚱한 데를 쳐다보고 있는 격이었다. 철저히 약자를 무시하는 셈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부부관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부단한 노력을 했다.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싸움이 줄어지고 오히려 아내가 어머님에 대해 불평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아내와 나의 팽팽한 줄다리기와 같은 긴장이 없어졌다. 그제야 아내가 실제로는 어머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는 결혼 초부터 어머님께 한 결 같이 잘해 주었다. 어머님이 아내에게 상처를 주든 말든 아내는 변함이 없었다. 세월이 흐르며 다른 며느리들이 어머님께 무관심했을 때도 아내는 계속 어머님을 찾아뵙고 보살폈다. 매년 휴가 때마다 우리들만의 휴가는 가지 않고 부모님을 방문하였다. 결혼 후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내와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부터 아내는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을 자주 찾아갔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어머님께 숟가락으로 미음을 떠드리고 어머님의 몸을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었다. 그런 며느리를 어머님은 흐뭇하게 쳐다보며 무척 좋아라고 했다. 재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아내는 대성통곡하였다. 어머님을 처음 만난 지 27년의 세월이 지났다. 아내의 마음에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사실은 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의 따듯한 위로만 필요했던 것이다.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나의 지난 경험이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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