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변호사 방에서 조용히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리셉션 창구에서 전화가 온다. “한 변호사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하던 일을 즉시 중단하고 재빨리 차림새를 추스른 후 방문 앞으로 걸어간다. 손님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방문을 먼저 열어 드린다. 손님의 눈을 마주치자 반갑게 인사한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소파에 손님이 앉자 “차나 커피 드시겠어요?”손님에게 공손히 묻는다.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격적으로 상담에 들어간다. 손님은 공사업 자이다. 주택을 지어서 분양하는 사업을 한다. 손님의 이야기가 끝이 없다. “공사를 해서 건축주로부터 공사비를 받아야 하는데, 건축주가 건물에 하자가 많아서 공사비를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건축주가 주장하는 하자보수비가 공사비에 맞먹는다.”손님은 매우 분개해한다. 손님의 말을 차분히 다 경청한다. 손님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도록 기다린다. 이윽고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내용 파악을 하는데 거의 2시간이 걸린다. 건축주를 알게 된 경위, 공사계약 체결 과정, 공사계약서의 내용, 공사 과정, 건축주의 불만, 하자의 구체적인 내용, 하자보수비 예상액 등 검토할 사항이 너무 많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상담에 집중한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른다.
“저녁식사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지요”손님이 제안한다. “괜찮습니다. 그냥 상담을 계속하는 게 좋겠습니다.” 상담이 도중에 중단되면 대화의 집중도가 떨어져 내용 파악이 더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법적인 사항을 정리하려면 상당히 두뇌를 집중하여야 한다. 식사하며 상담을 이어가면 밥맛도 없어지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게 된다.
드디어 법적인 정리를 시작한다. 손님에게 사건의 전말을 법적으로 다시 종합하여 말한다. “하자보수에 대한 법원 감정보고서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한번 나온 법원 감정보고서를 깨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정보고서에서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명백한 오류를 찾아내야 합니다.” 소송의 승패 가능성도 솔직하게 말한다.
이미 식사시간은 한참 지났다. 배가 매우 고프다. 손님은 내가 친절하고 깊이 있는 상담을 해 주어서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한 상담을 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지금이라도 식사나 하자고 한다. 늦은 시간에 식사하고 싶지는 않다. 3 ~ 4시간의 강도 높은 상담으로 인해 진이 빠졌다. 휴식이 필요하다. 정중히 거절한다. “아닙니다. 집에서 먹겠습니다.”
상담을 업으로 하는 변호사 일을 한지가 15년째이다. 지금까지 수백 명의 손님을 만나 이렇게 상담을 하며 지냈다. 법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변호사도 가정 상담사, 심리 상담사처럼 타인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 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변호사는 싫든 좋든 손님을 만나 많은 시간을 대화하며 소통을 하고 공감을 해야 한다. 손님과 소통이 되지 않고 공감도 하지 않으면 변호사 업무를 수행할 필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셈이 된다. 변호사로서의 생존을 위해서도 소통과 공감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
이렇게 소통과 공감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변호사인 내가 가정에서는 어떨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내 아내와 자녀에게 공감하고 소통은 잘하는가? 직업상 만나는 손님을 통해 개발된 나의 공감능력은 가정에서도 매우 뛰어나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가정에서는 나의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공감능력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 길래 나에게 그것이 부족할까? 나의 공감능력 부족으로 인해 내 아내와 자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대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만 28세에 결혼하였으니 결혼생활 28년째이다. 공교롭게도 부모와 함께 한 세월도 28년, 부모를 떠나 가정을 꾸민지도 28년이다. 나의 정체성은 부모와 함께 생활한 어린 시절에 많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당신 집안은 서로가 참 무관심한 것 같아요”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아내의 집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아내 가족들을 만나면 시끌벅적, 요란법석이었다. 박장대소가 터졌다. 잘못하면 가족 간에 싸움도 벌어졌다. 한마디로 사람의 속 감정이 그대로 밖으로 표출되었다.
나의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가족끼리의 대화도 조용했다.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좋다는 것인지 싫다는 것인지 애매했다. 물론 가족 간의 싸움은 없었다. 한마디로 감정이 밖으로 표현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렇게 완연히 색깔 차이가 뚜렷한 두 가정에서 자란 나와 아내가 만나 결혼하였다. 아내가 나더러 공감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상대의 기쁨과 아픔을 마음으로 같이 느껴 주고 함께 해 줄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 공감능력인데 이게 많이 부족한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완강히 거부했다. 부부 싸움이 있을 때 아내가 아픔을 말하면 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 깊이 있게 공감하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내 감정을 잘 추스르고 평정을 유지하는 훈련이 잘 되어서 그런지 감정적인 동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 5년까지는 많이 다투었다. 물론 평상시에는 아내와 화목하게 지냈지만 어떤 계기로 싸움이 있을 때 그랬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단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아내의 말이 옳다는 점을 인정했다.
부부 싸움의 깊은 원인이 밝혀졌는데도 머리로만 이해가 되었지 실제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았다. 바깥세상이 바뀌는 것보다 내 안의 마음이 바뀌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았다.
“내가 미안해”. 일이 해결되지 않았어도 일단 그렇게 아내를 품어주고 공감하려고 애썼다. 우선순위를 바꾸어 일의 해결은 뒤로 미루었다. 싸움의 횟수가 훨씬 줄었다. 싸움이 지속되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공감 부족에 대한 아내의 불만도 조금씩 완화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완전히 내가 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툴 일이 생길 때마다 나의 문제점은 공감능력이라고 자각하려고 노력한다. 꾸준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나를 탓하기에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삶이 더 많다.